< M 인터뷰-이나가키 에미코 >"퇴사후 5년..가진 돈·물건은 줄었지만 친구·취미 늘었죠"

박동미 기자 2021. 4. 30. 10:5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줌에서 만난 이나가키 씨가 최근 그린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고양이가 아니라 곰으로 보였다면 성공이다”며 웃었다.
최근 리옹 여행기를 다룬 책 ‘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를 낸 이나가키 에미코 씨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책 말고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곤란하다며 웃었다. 이나가키 에미코 제공

■ ‘퇴사하겠습니다’로 퇴준생 열풍 그후 이나가키 에미코

코로나 시대, 동네사람들이 가족

근처가게는 냉장고, 카페가 서재

없으니 도우며 사는 행복 더 느껴

‘회사=일=나’가 되어서는 안돼

언제 떠나도 좋을 마음 필요해

경쟁서 져도 인정받을 수 있어

리옹으로 셀프 특파…2주 보내

말 안 통해 진심어린 행동 필요

“이웃과 소통은 인류 공통 행복”

한·일 양국에 ‘퇴준생(퇴사준비생)’ 열풍을 일으킨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稻垣えみ子·56)의 신간 ‘인생에는 특별한 것과 평범한 것이 모두 필요하다’(엘리)가 최근 나왔다. 프랑스 리옹을 2주간 여행한 후 쓴 것인데 숱한 ‘평범한 여행서들’과 달리 일상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이어가는’ 것에 초점이 있다. 이는 그가 28년 다닌 안정된 직장을 그만둔 후, 전기 없는 삶을 살아내고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냉장고 없이 직접 밥상을 차리는 훈련을 하며(‘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깨닫고 다져온 ‘생활철학’과 닿아 있다. 도쿄(東京)에서의 소박하고 소소한 일상을 리옹에 옮겨 그대로 실행한 그는, 그 짧은 2주 동안 ‘무한한 세계’를 만났다고 고백한다. 이런 ‘감각’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아프로 헤어를 한 자유인, 50대 비혼 여성, 미니멀리스트…. 하나의 수식어로는 설명 불가능한 그와 최근 줌(zoom)과 이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인생을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게 만드는 비결이 뭔지 배워보고 싶었다. 퇴사 5년, 정말 후회는 없을까 솔직히 궁금도 했다.

―코로나 시대, ‘생활철학자’는 어떻게 살고 있나.

“아주 작은 집에 산다. 가스가 들어오지 않고, 전기도 최소한으로 쓴다. 여러 사람이나 가게에 의지해 생활할 수밖에 없다. 근처 가게가 내 냉장고, 대중목욕탕이 내 욕실, 카페가 내 서재다. 코로나 이후 일본에선 ‘스테이 홈’이란 말을 자주 쓰는데, 내게 그 ‘홈’이 우리 마을이다. 물건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정도 더 깊어졌다. 코로나는 확실히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애초 인생에서 힘들지 않은 일이 있던가. 평소처럼, 평범하게, 기분 좋게 살고 있다.”

―퇴사, 지금도 후회는 없나.

“그 질문은 끊임없이 받는데…, 내 답변은 명확하다. 전혀 후회 없으며, 돈과 직함에 의존하지 않는 이 심플한 생활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그편이 훨씬 쾌적하고 즐거우니까. ‘없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강하게 실감하는 나날이다.”

―퇴사 후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돈, 직함에 휘둘리지 않게 된 만큼 친구와 취미가 늘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매우 규칙적이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명상과 청소를 한다. 7시에 집 근처 친구네 회사로 피아노 연습을 하러 간다. 우리 집엔 피아노를 둘 공간이 없어서 친구 회사에 맡겼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9시에 출근하니까, 그전에 가서 연습하고 빨리 나온다. 그렇게 한 지 벌써 2년 반이다, 하하. 그 후 동네 카페에 가서 아침 식사를 하고, 3시간 정도 글을 쓴다. 점심엔 직접 밥을 해먹는다. 2시가 되면 오전과는 다른 카페로 가서 또 3시간 일한다. 저녁도 집에 돌아와 직접 지어 먹는다. 아, 그리고 대중목욕탕을 거의 매일 간다. 돌아와서 라디오를 듣다가 잠든다.”

―집에 혹시 욕조가 없나.

“욕조는 있지만 물을 데울 가스가 없다, 하하. 나는 가능한 한 전기와 가스가 없는 생활을 추구한다. 또, 대중목욕탕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어서 좋다.”

―목욕탕에서 ‘친구’가 된다고?

“동네에서 사귄 친구만 100명이 넘는다. 가까운 데 살며 도움을 주고받는 게 친구 아닌가. 과연 나와 연결된 친구는 몇이나 될까 궁금해서 최근에 전화 번호를 세어봤다. 전부 카페, 목욕탕, 동네 가게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냉장고 없는 삶은 힘들지 않나?

“집 냉장고에 왜 그렇게 채워 넣는 것일까. 가까운 데 슈퍼도 많은데…. 냉장고가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들지 않나. 너무 많이 먹으려고 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인인 나는 밥과 미소시루(된장국) 정도면 된다. 한국인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밥, 김치, 국 간단한 식사라면…. 배가 고프면 밥을 좀 더 많이 드시고, 하하.”

이나가키 씨는 첫 책 ‘퇴사하겠습니다’에서 50세에 퇴사를 감행하기 위해, 10년 정도 준비한 과정을 밝히고, ‘회사를 너무 사랑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한국어판 제목의 강렬함 때문인지, 지긋지긋한 회사를 ‘벗어나는’ 매뉴얼서의 이미지를 안고 있지만, 사실 이나가키 씨는 회사도 일도 무척 사랑했다고 한다. 일본어 원제도 ‘영혼의 퇴사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魂の退社 會社を辭めるということ.)’으로, 뉘앙스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회사를 너무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를, 독자들이 약간 오해하는 것 같다.

“그건 ‘회사=일=나’가 되는 걸 경계하라는 거였다. 회사가 내 가치관까지 점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자신의 존재 이유가 회사가 되고, 돈에 의존하는 것. 회사에 다니더라도 그런 생각은 빨리 졸업하고, 언제 떠나도 괜찮다는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 두라는 뜻이었다.”

―인간은 늘 존재 의의를 필요로 한다. 퇴사 후 존재를 증명해 주는 건 무엇인지.

“집 근처 작은 두부 가게에서 두부를 사고, 가끔 ‘덤’을 얻는 것. 공원에서 할아버지에게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것. 이런 서로 간의 ‘인정’이 행복이다. 그걸로 난 존재한다.”

―꾸준히 책을 출간하고 있다. 내용이 매번 새롭다. 퇴사를 출발점으로, 결승점을 향해 달리며 성장하는 느낌이다.

“감사하게도 우연히 쓸 기회가 생겼고, 여러 연결고리가 생겨나 퇴사 후 달라지는 삶을 계속 책으로 낼 수 있었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는 것 자체보다 퇴사 후 어떻게 살지 그게 더 중요한 문제 아닌가.”

―‘먹고 사는 것에 대하여’는 냉장고 없는 조촐한 밥상에 대해 썼다. 신작은 그 일상을 다른 나라로 옮긴 이야기다.

“지금 삶의 방식, 즉 단순하게 살면서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경의를 가지고 쇼핑하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친절을 베푸는 것. 그걸 해외에서도 해보고 싶었다. 남을 인정하고 나도 인정받는 것. 분명 이 감각은 인류 공통의 것이라 믿는다.”

―퇴사→미니멀라이프→해외 생활로 이어지는 과정은 한마디로 무엇일까.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아는 과정이었다. 행복이 뭔지 아는 게 내게 중요했고, 그걸 발견한 지금은 그저 하루를 힘껏, 즐겁게, 담담하게 살 뿐이다. 바쁘다든가, 한가하다든가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인데, 그런 말은 자신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있을 때 하는 말 아닌가.”

이나가키 씨는 아사히신문에서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치며 28년을 근무했다. ‘특파원’을 해보고 싶어 기자가 됐을 만큼 외국 생활을 동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동안 기회가 생기진 않았다고. 그래서일까. 리옹 여행을 그는 ‘셀프 특파’라고 명명한다. 30년 가까이 일한 직장 여성으로, 일본 유력지의 기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해봤을 텐데도, 그는 리옹행이 낯설고 두려운 도전이었다고, 그러기에 ‘모험’이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스스로 ‘특파(特派)’한다는 표현이 재밌었다.

“나는 퇴사 후 마을 사람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우리 동네를 내 집으로 생각하며 산다. 리옹에 나를 보낸 건, 그 ‘집’의 무대를 넓히려 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좀 어마어마한 목표이긴 했다, 하하. 나 자신을 단련하자는 의미도 있다. 말이 안 통하는 상항에서는 행동을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마음을 전할 수 없으니까.”

―리옹 여행이 그렇게나 모험이었나.

“기자 시절에도 많은 경험을 했지만 회사원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다. 진정한 모험이란 테두리를 넘어 도전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도전한 일은 뭔가.

“온라인으로 발레와 서예 수업을 듣고 다도도 배우고 있다. 그리고 화가가 됐다! 아, 정확하게 ‘화가인 척’을 하고 다닌다, 하하. 동인 그림 잡지에 1만6500엔(약 17만 원)을 내고 나도 한 페이지를 얻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무것도 그려 본 적 없지만 그래도 도전했다.”

―무슨 그림을 그렸나.

“(액자를 들어 보여주며) 뭐로 보이는지. 곰? 고양이? 곰으로 보였다면 성공이다, 하하. 지금 전시 중인데 5000엔이다. 그런데 액자만 3000엔이다, 하하.”

―다음 책을 준비 중인가. 또 어떤 삶의 가능성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혼술’ 관련 책을 낼 것 같다. 혼자 아무 가게나 들어가 술을 마시는 걸 굉장히 동경해왔다. 여러 가게를 들어가 보고, 부끄러워하고, 또 실패해 가면서, 비로소 편안하게 ‘혼술’을 할 수 있게 됐다. 여성들에게 그 즐거움을 알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삶의 가능성이라…. 그저 열심히 살겠다는 말밖엔 못하겠다. 그래도 ‘이상’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며 살다가, 마지막엔 ‘제로’가 돼 죽어가는 것, 그뿐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