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조' 굳힌 아마존, 최저시급 인상으로 '직원 달래기'
아마존이 28일(현지 시각)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50만명이 넘는 미국 내 사업장 직원의 시급을 최저 50센트, 최고 3달러 인상한다고 밝혔다. 아마존 미 사업장의 최저시급은 현재 15달러다. 미 전역에서 근무하는 아마존 직원은 약 95만명이다.
미국 내 최초의 노동조합 설립 시도가 무산되면서 한숨 돌린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가 ‘승리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평가다. 노조 설립 찬반 투표 결과를 확정하는 미 노동관계위원회(NLRB) 청문회를 앞두고 임금을 올려 민심 잡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소매·도매·백화점 노동조합(RWDSU)는 지난 9일 노조 설립 찬반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아마존이 직원들을 회유하기 위해 불법적인 행위를 저질렀다’며 NLRB에 제소했다. NLRB는 오는 5월 7일부터 관련 청문회를 열고 앞서 나온 투표 결과를 인정할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미 앨라배마주 베서머 아마존 물류 창고 직원 3215명은 지난 9일 RWDSU 산하 노조 설립을 놓고 투표를 실시했다. 이중 유효표는 총 2536표로 집계된 가운데, 70.9%에 달하는 1789표가 노조 설립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표는 738표에 그쳤다. 투표 참여자 가운데 23.0%, 전체 직원(5876명) 중 12.6%만 노조 가입을 희망한 것이다.
이번 노조 설립 시도가 무산된 데에는 기존 노동계에 대한 실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루스 밀크먼 뉴욕시립대 노동관계학과장은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그간 다른 사람들이 막대한 돈과 에너지를 쏟아도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아마존 직원들은 같은 시도를 하는 것 자체에 피로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노조 설립을 반대한 직원 대표인 윌리엄 스톡스는 11일 기자회견에서 “노조는 작업 조건을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지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며 “우리는 노조 없이도 결함을 고쳐나갈 수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데 왜 노조에 돈을 내야 하느냐”고 되물은 바 있다.
고용 안정에 대한 아마존 측의 설득도 효과적이었다. 아마존은 앨라배마주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7.5달러인 데 반해 아마존은 초임이 시간당 15달러라는 점을 들어 ‘비싼 돈을 내는 노조를 설립해도 이런 노동조건 이상을 따낼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회사가 향후 100일 동안 관리직 사원들의 재교육 등 노동자들의 우려 사항들을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우리는 노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베서머 물류 창고 같은 곳에서는 노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라고 밝힌 스톡스의 발언이 이를 증명한다. 마거릿 오마라 워싱턴대 교수는 투표 결과를 두고 뉴욕타임스(NYT)에 “아마존이 고임금을 주는 좋은 일자리란 사실이 노조 측의 비판 메시지를 압도했다”고 설명했다.
노조 설립을 주도한 RWDSU 측은 즉각 이의를 신청했다. 아마존이 직원 필참 회의에서 이번 투표의 의미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렸고, 투표를 감시하기 위해 회사 앞마당에 우편투표함을 설치할 것을 우체국에 강요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협박성 문자 메시지 발송 등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아마존이 취한 일련의 행위에 대한 의회 조사도 요구한 상태다.
외신은 미국 내 고용 규모 1위인 월마트(160만명)에 이어 2위인 아마존에서마저 노조 설립 시도가 좌절된 것은 업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예고한다고 전했다. 이 여파로 무노조 경영이 절대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NYT는 미 노동운동가들이 앞으로 개별 사업장의 노조 설립 시도보다 연방 차원의 최저임금 인상 등 제도와 정책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또 노조 설립을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해 노동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갤럽 조사를 보면, 미국 민간 분야에서 노조조직률은 1950년대에 노동자의 3분의 1, 1973년 24.2%에서 현재 6.3%로까지 하락했다. 현행 노사관계법이 아마존과 같은 대기업에서는 개별 사업장별로 노조 설립 투표를 진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 전체 차원의 노조 조직을 어렵게 한다.
노동계는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이번 아마존 미 노조 설립 움직임이 다른 곳의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제노조연맹 ‘유엔아이 글로벌 유니언’의 크리스티 호프먼은 사무총장은 “아마존이 유럽에서는 노조를 허용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무노조 경영의 종식은 시간 문제”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거대 기업들의 수익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한 만큼 어떤 형태로든지 고용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압력도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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