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배식마저 실패한 軍

안용현 논설위원 2021. 4. 28.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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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급식

1960년 장병 1인당 하루 급식비는 25원이었다. 멀건 국에 김치만 나왔다. 쌀이 부족해 1969년부터 라면을 줬다. 부대 인원만큼 정확하게 배식하지 못하면 뒤의 장병은 굶어야 했다. 그래서 “작전·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하면 죽음”이란 우스개가 유행했다. 2012년 전방 부대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70년대 군 시절을 회상하며 ‘한우 도망탕’ 얘기를 꺼냈다. 고깃국에 고기가 도망간 듯 없었다는 것이다. 1976년에야 장병 식탁에 세 가지 반찬이 올랐다. ‘1식3찬'이다.

▶올해 장병 1인당 급식비가 8790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350배 이상 늘었다. 그런데 요즘 장병은 살 찔까 봐 일부러 적게 먹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위해 국방부는 칼로리를 낮춘 식단을 개발하고 해군은 샐러드바까지 운영한다. 불고기·닭튀김 같은 반찬은 ‘잔반'으로 남을 때가 많다고 한다. 가축 사료 등으로 쓴다고 하지만 넘치는 군대 잔반 처리에 골머리를 앓는 시대다.

▶그런데 최근 군 부대의 부실 급식을 고발하는 글과 사진이 잇달아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불고기 당면 볶음’에 불고기가 없고, 돈가스 반찬은 손가락만 하고, 국 없이 밥만 나왔다고 장병들은 분개했다. 생일 케이크라고 받아 보니 1000원짜리 빵에 초 하나 꽂힌 사례도 있었다. 휴가 복귀 전 코로나 방역으로 격리된 일부 장병은 밥과 나물 한 숟갈, 깍두기 두 쪽이 전부인 도시락을 받기도 했다. 부대의 기존 식사만 도시락에 담아줘도 됐는데 그 걸 안 한 것이다.

▶국방부 해명을 종합하면 한 마디로 ‘배식 실패’다. 급식 담당자의 부주의 등으로 음식을 적게 받거나 빼먹었다는 것이다. 부실 도시락은 격리자 배식 등을 잘못 계산했다고 한다. 생일 케이크도 수요 공급의 착오였다고 해명했다. 요즘 장병이 배가 고파 부실 급식을 고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횡령한 것 아니냐는 공정과 정의 문제에 민감한 것이다. 육군 훈련소는 방역을 이유로 신병의 목욕과 화장실 이용까지 통제해 젊은 층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세상에 어떻게 화장실 이용을 막나. 경직된 사고와 책임 회피 일변도가 합쳐져 과도한 대책이 나온 것이다.

▶이 정부 들어 군은 적(敵)의 눈치를 본다. 군사력 아니라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헛소리까지 했다. 취객과 치매 노인에게도 부대가 뚫렸다. 한·미 훈련은 컴퓨터 키보드로 한다. 하극상 등 군기 문란은 일상이 됐다. 이제는 배식마저 제대로 못 한다. 그 많은 장군들은 이러고도 밥이 넘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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