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맛깊은인생] 찬물의 구체적인 감각

남상훈 2021. 4. 2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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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1일.

프리랜서로 살겠다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니다.

프리랜서가 된 지, 벌써 16년이 됐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일이 지루해질 때마다,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2006년 7월 1일, 냉장고를 열고 마셨던 찬물 한 컵의 감각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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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1일. 프리랜서가 됐다. 8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출근할 곳이 사라진 첫 아침을 맞은 날, 침대를 빠져나와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물 한 컵을 마시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 팔베개를 하고 천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누워 있었다. 한 시간 동안 그렇게 있다가 책상으로 가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무언가를 쓰며 살고 있다.

눈을 뜨면 또 하루가 생겨나고, 그 하루는 해야 할 일로 가득하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또 한다. 그 사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누군가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다 보면 하루가 간다.

그 하루가 지나면 또다시 해야 할 일로 가득한 하루가 시작된다. 해야 할 일과 해야 할 일 사이, 해야 하는 다른 일이 끼어든다. 그 사이 가끔 여행을 떠날 때도 있다.

프리랜서로 살겠다고 처음부터 마음을 먹었던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대부분 그렇지 않은가요. 의도치 않게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요?) 주위를 둘러본다. 아, 나는 왜 여기 서 있는 거지? 공항에 불시착한 펭귄 같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끝없이 고치고 또 고쳐야 한다. 하나씩 하나씩. 그것이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을 해보니 알겠다. 일단 이걸 잘하고 그다음 일로 넘어가면 된다.

너무 먼 곳을 보지 않는 것이 요령이다. ‘각자의 일을 하는 각자’에 의해 이 세상의 업무는 진행되고 세상은 돌아간다. 각자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사과를 하고 사정을 하며 칭찬을 하고 격려를 한다. 아픔과 슬픔,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아주 간단한 이치다.

프리랜서가 된 지, 벌써 16년이 됐다. 회사원과 다르지 않다. 회사원이 회사에 가길 싫어하듯, 여행작가도 여행이 싫다. 이유는 많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어차피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니까.

지금은 새벽 4시다. 1박2일 일정의 전주 취재를 위해 용산KTX역으로 가는 첫 전철을 타려면 일 하나(이 칼럼)를 마무리해야 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마다, 일이 지루해질 때마다,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마다 2006년 7월 1일, 냉장고를 열고 마셨던 찬물 한 컵의 감각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했을 때, 다만 하나 확실하고 또렷하게 다가왔던 그 감각. 소리 없는 응원 같았던 찬물의 분명함. 내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구체적인 일정표와 통계, 5킬로미터 달리기, 하루 5매 쓰기가 우리 일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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