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예술처럼.." 제주 넥슨컴퓨터 박물관 가보니

이용익 2021. 4. 2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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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넥슨컴퓨터박물관 가보니
게임 예술화·아카이빙 위해
2013년 제주에 넥슨박물관
최근엔 미출시 7종 게임 모아
네포지토리 베타 프로젝트
세계 최대 게임박물관은 물론
美 스탠퍼드 도서관서도 관심
최윤아 관장"아빠와 아이가
함께 게임하는 모습에 뿌듯"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 관장.
"게임에서 성공의 기준이 뭔지부터 의문 아닌가요? 돈을 많이 벌거나, 매출은 좀 적었어도 완성도가 높다고 호평을 받거나,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며 족적을 남겼거나…. 앞으로도 게임을 계속 만들 것이라면 이 모든 시도를 실패라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약 10년 전 현대 미술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이 '테트리스' '팩맨' 등 게임을 영구 전시 목록에 추가하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게임이라는 장르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관객과 작품 간 상호작용이 가능한 '인터랙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의 한 축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2013년 설립된 넥슨컴퓨터박물관이 게임의 예술화와 아카이빙을 시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장소로 꼽힌다.

제주도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만난 최윤아 관장은 "그냥 쌓아 두는 게 아니라 도서관에서 분류화를 잘 시켜놨다가 필요할 때 데이터를 꺼내 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해야 진정한 아카이빙"이라고 강조했다. 아트선재센터 등에서 예술교육·전시 업무를 하다가 넥슨컴퓨터박물관 건립에 자문해 준 것을 인연으로 관장까지 맡게 된 최 관장은 "사회적으로 게임이 주류 산업이 아니었고 문제점 위주로 지적받던 때에 시작한 일이지만 모래 한 줌이 모여 모래성을 쌓듯이 오늘까지 왔다"고 돌아봤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의 네포지토리 전시. [사진 제공 = 넥슨]
현재 최 관장과 넥슨컴퓨터박물관이 집중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름은 '네포지토리(NEpository) 베타'다. 넥슨과 저장소라는 의미의 단어 'Repository'를 결합해 그동안 넥슨이 만들었지만 출시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게임들의 기록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시에서 다루고 있는 게임 7종 중에는 '페리아 연대기'나 '드래곤 하운드'처럼 이미 제작 여부가 공개되었다가 좌초한 프로젝트도 있지만 아예 알려지지 않았던 게임들도 공존하고 있다.

게임이 잊혀지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첫 번째 시도는 아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은 이미 2014년 최초의 그래픽 기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으로 인정받고 있는 '바람의 나라' 초기 복원 작업에 나선 바 있다. 1996년 처음 만들 당시 소스가 없어 1998년 소스를 기반으로 김정주 NXC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등 초기 개발자가 참여해 만들었다. 최 관장은 "그렇게 돈이 많이 들 줄은 몰랐다"고 웃으면서 "게임을 잘 모르고 박물관 일을 하던 사람이지만 막상 복원한 뒤 수십만 명이 내려받는 모습에 온라인 게임의 가치가 예술 콘텐츠 못지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 역시 유사한 관점에서 다양한 게임을 탄생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개발자들의 노고를 조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최 관장은 "넥슨이라고 하면 개발 안 하고 퍼블리싱 위주로 하는 대형 게임사로만 아는 사람이 많은데 실험적인 시도도 열심히 하고 있는 걸 알게 되면서 추진했다. 출시를 성공과 실패의 기준으로 삼지 말자는 것"이라며 "개발자 중에는 공개를 반대하는 분도 있었겠지만 이걸 잘 아카이빙하면 추후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시를 위해 무려 30개가 넘는 미출시 게임의 데이터를 받아 추려 내는 작업이 결코 쉽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는 것이 최 관장을 포함한 직원들의 목소리였다. 최 관장은 "보안 문제로 인해 판교에서 제주도까지 인편으로 수백 기가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가 여러 차례 오가며 데이터 홍수에 빠졌지만 그만큼 아까운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디지털 콘텐츠를, 그것도 세상에 출시되지 못했던 것들을 시각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세상의 반응도 뜨겁다.

넥슨컴퓨터박물관 네포지토리 전시에서 한 아버지와 아들이 미출시 게임 `프로젝트 애니웨이`를 함께 즐기고 있다. [이용익 기자]
전 세계 가장 큰 게임 박물관으로 꼽히는 미국 플레이스트롱뮤지엄도 넥슨컴퓨터박물관을 레퍼런스로 삼고, 게임 아카이빙을 연구하던 스탠퍼드 도서관에서도 이 사례를 발표하겠다고 연락이 왔을 정도다. 하지만 최 관장이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역시 전시를 즐기는 이들을 직접 만날 때다. 최 관장은 "전시 내용을 모른 채 연인과 함께 방문한 개발자가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다가도 자신이 이 게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한참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거나,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전시된 '프로젝트 애니웨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최 관장은 "코로나19만 아니었어도 오프라인 준비를 더욱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 일단은 관람객 입장에서 내가 직접 내 콘텐츠 만들고 쌓아 갈 수 있는 제대로 된 온라인 플랫폼, 온라인 박물관을 내년 초쯤까지는 선보이고 싶다"며 "이후 오프라인에서도 규모를 더욱 키우고, 관람객이 자신의 나이와 어릴 때 플레이했던 게임을 말해 주면 거기에 맞게 각자의 동선을 짜 주는 등 전시 자체를 온라인 게임화하는 느낌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시도도 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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