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피해 유족 "미 군정도 조사하라"

윤경재 2021. 4. 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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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창원]
[앵커]

국민보도연맹, 1949년 당시, 이승만 정부가 좌익 전향 인사들을 교화하겠다며 만든 단체입니다.

민간인들이 대거 포함된 보도연맹원들은 6.25 전쟁 당시 이적 행위자라는 누명을 쓰고 정당한 재판 절차도 없이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특히 마산·창원·진해에서는 1950년 6월부터 약 두 달 동안 보도연맹원 500여 명이 영장도 없이 마산형무소 수감됐고, 이 중, 사형 집행이 확인된 희생자만 141명입니다.

이 비통한 죽음의 진실을 바로 잡아달라며 유족들이 재심을 청구했었죠.

지난해 법원은 희생자 21명에 대해 70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첫 무죄 판결 뒤 1년여가 흐른 지금, 유족들은 진실화해위원회에 미 군정에 대한 직권 조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보도연맹 가입을 강요받았던 배경에 바로 미 군정의 포고령이 있다는 건데요.

윤경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73살 노치수 씨의 아버지 고 노상도 씨는 1947년 마산고등학교의 전신 마산공립중학교 교사였습니다.

아버지 노 씨는 같은 해 7월 정권을 국민에게 넘기라, 토지를 농민에게 주라, 남녀평등권을 실시하라, 친일파를 숙청하라는 4가지 요구가 담긴 전단 10여 장을 만들어 전봇대에 붙였습니다.

아버지 노 씨는 미 군정 아래 범죄자로 낙인됐습니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서기 전,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미 군정은 해방 뒤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만든 포고령 2호를 위반했다며, 아버지 노 씨에게 징역 8개월에 벌금 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노치수/보도연맹 희생자 유족 : "미군정 자기들의 어떤 법률에 의하면 잘못된 줄은 몰라도 제가 볼 땐 이건 국민으로서 할 이야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1946년 찍은 김구 선생과 추종자들의 단체 사진입니다.

안보 강화를 외치며 해병대 창설을 주장하기도 한 당시 해군 소령 고 이상규 씨, 미 군정은 1948년, 김구 선생을 따른다는 이유로 이 씨를 해군에서 파면하고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동주/보도연맹 희생자 유족 : "김구 선생 추종 세력이니까 그대로 두면 우리가 덮어쓰겠다, 그래서 (해군 동료들이) 공작을 한 것 같아요."]

이승만 정권이 좌익인사를 교화하겠다며 만든 보도연맹에 포함돼 6·25전쟁 당시 무고하게 학살당한 희생자들.

유족들은 희생자들이 보도연맹에 들게 된 배경에 미 군정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 군정이 법률도 아닌 성명서 수준의 포고령 2호를 근거로 낙인 찍은 전과가 보도연맹 가입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이명춘/변호사 : "전과가 보도연맹 가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고 또 학살의 이르게 되는 굴레의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느냐…."]

유족들은 2기 진실과화해위원회에 미 군정의 인권 침해와 조작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결과에 따라 특별 재심을 청구할 계획입니다.

KBS 뉴스 윤경재입니다.

촬영기자:지승환/그래픽:김신아

윤경재 기자 (econom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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