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빌미로 기본권 옥죄려는 러시아

장은교 기자 2021. 4. 27.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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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나발니 관련 단체에
검찰 이어 활동 중단 명령
표현·집회 자유 원천봉쇄
"구소련 체제로 회귀" 비판

[경향신문]

소련인가, 러시아인가. 러시아 검찰이 정부 비판 세력의 활동을 중단시킨 데 이어, 법원이 추가적인 활동 중단을 명령하면서 러시아가 구소련 체제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러시아 당국이 겨냥한 것은 수감 중인 야권 정치활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사진)가 이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비판 단체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억제가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모스크바시 법원이 27일(현지시간) 나발니가 이끄는 반부패재단과 시민권보호재단의 특정 활동에 대해 중단 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두 단체는 인터넷에 정보를 게재하거나 집회·시위 조직, 선거 참여 등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앞서 모스크바 검찰은 나발니 관련 단체들을 ‘극단주의 단체’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고, 이들 단체의 일부 활동을 잠정 중단시킨 바 있다. 지난 몇주 동안 나발니 관련 재단을 수사한 검찰은 이 단체들이 국가전복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6일 모스크바 법원에서 첫 심리가 열렸는데, 검찰이 관련 증거들이 모두 국가안보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해 재판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정부 비판 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는 이미 발휘되고 있다.

반부패재단 등은 2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포함해 모든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반 즈다노프 반부패재단 대표는 트위터에 검찰의 명령문을 올리며 “‘당신들의 저항이 두려워, 당신들의 현명한 투표가 두려워’라고 소리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법에 따라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되면 단체활동가들은 최대 6년까지 징역형을 살 수 있다. 재정 지원의 경우 최대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나발니 관련 단체들은 유튜브와 트위터 등을 통해 정부의 부패 의혹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되면 그 단체의 게시물을 자신의 SNS에 가져가거나 ‘좋아요’ 표시만 눌러도 처벌받을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나발니의 정치운동 구호인 ‘러시아는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셔츠만 입어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초 러시아에서 국외로 도피한 반부패재단의 한 이사는 워싱턴포스트에 “정보기관에서 누군가를 간첩으로 지목하고 비밀재판을 여는 건 소련을 떠올리게 한다”며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를 소련으로 끌고 가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나발니 석방 시위를 하다 가택연금된 정치활동가 마리아 알료키나는 “스탈린식 통치”라고 말했고, 지난 21일 나발니 지지시위에 나온 80세 시민은 “소련 때보다도 더 나쁜 권위주의 체제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나발니 관련 단체들을 극단주의 단체로 지정한다면 소련 붕괴 후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에 가장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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