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전 박혁거세 부인 관련 삼국유사 기록 사실이었다

2021. 4. 2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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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영부인..계룡 나타나 낳은 여자아이 씻긴 곳
동궁월지~계림 하천 '발천', 돌다리터, 도로 확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발굴조사, 29~30일 공개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삼국유사’에 설화처럼 기록돼 있던 ‘신라 시조’ 박혁거세 부인과 관련된 유적이 경주 동부사적지대에서 발견돼 2000년 전 어떤 일, 어떤 모습이었을지에 관한 토론과 연구가 본격화했다.

동궁월지에서 출발한 ‘발천’이 계림을 거쳐 남천과 합류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월정교 인근. 발천은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이 태어나자 몸을 씻겼는데, 닭부리 같은 것이 제거(撥)됐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나아가 친중·친신라 사대사관으로 쓰인 ‘삼국사기’는 교과서처럼 믿으면서 왕실과 귀족사회, 민중 속의 숱한 이야기를 집대성한 삼국유사를 ‘야사’로 치부하며 평가절하하는 것을 반성하는 모습도 나타날지 주목된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과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 경주시(시장 주낙영)는 신라왕경 핵심 유적 복원 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주동부사적지대(발천) 수로 복원 정비를 위한 발굴작업을 벌인 결과, 신라 첫 번째 왕의 왕비 ‘알영’과 관련된 ‘발천’이라는 하천, 수로, 돌다리 터(석교지), ‘석교지’ 연결도로와 수레바퀴 자취 등의 흔적을 발굴했다고 27일 밝혔다.

▶2000년 전 얘기지만 삼국유사 기록과 일치=발천은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월성 북쪽과 계림을 지나 남천에 흐르는 하천을 가리키는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과 관련된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유래됐다.

발천에 놓인 돌다리 터.

삼국유사 권1, ‘기이 1편’에 ‘사량리 알영정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아 목욕을 시켰더니 그 부리가 퉁겨져 떨어졌으므로 그 천의 이름을 발천(撥川)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발(撥)’자는 10여가지의 뜻이 있는데, ‘다스리다’ ‘휘다’가 주로 쓰이며, 이번엔 ‘제거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물론 귀한 인물의 탄생을 상징하므로 ‘다스리다’는 뜻을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발천이 동궁월지 근처에서 출발해 유려한 곡선을 이루다가 남천과 합류 지점에서 크게 꺾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휘다’는 의미라고 봐도 일리 없지는 않다.

동굴월지에서 계림을 거쳐 교촌마을에 이르는 길가에 실개천이 흐르는데, 지금까지는 월성(신라왕궁)의 해자 흔적 같기도 하고, 과거에는 컸을 달천의 축소판 같기도 했었다.

동궁과 월지 앞 습지.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오는 29일 오전 10시에 발천 유적에 대한 조사 현장을 공개한다.

또한 29일 오후 1시부터 30일까지 이틀에 걸쳐 발천 복원 정비 방안을 논의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현장 공개와 학술대회는 문화재청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시청이 가능하다.

이번 발굴조사의 새로운 성과로는 무엇보다 679년(문무왕 19년)에 만들어진 ‘경주 동궁, 월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고대 발천 수로가 확인됐다는 점이다.

새로 확인된 수로는 오랫동안 알려져왔던 수로와는 다른 것으로, 이번 발굴을 통해 삼국시대에는 넓었던 하천 폭을 통일신라에 좁혀서 사용했던 양상과 고려 전기까지 사용되던 하천이 이후 폐기되는 시점이 확인됐다.

두 번째 성과로는 760년(경덕왕 19년) 축조된 경주 춘양교지와 월정교지보다 제작 시기가 훨씬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는 7세기 후반 ‘석교지’를 발견한 것이다.

석교지는 너비 5.2m 정도의 조그만 하천에 비해 다리 너비가 교각을 기준으로 11m가 넘는 큰 규모로, 잘 다듬어진 장대석(長臺石·길게 다듬어 만든 돌)을 이용해 양쪽 교대를 만들고 하부에는 교각과 교각받침석 7개가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된 형태다. 이외에 난간석·팔각기둥·사각기둥과 청판석 등의 석재가 상부에서 흩어진 채 확인됐다.

또 석교지 남쪽과 북쪽으로 연결된 도로 흔적도 찾았다. 석교지 북쪽의 도로에는 초석(礎石)과 적심석(積心石·돌을 쌓을 때 안쪽에 심을 박아 쌓은 돌)이 확인돼 기와집의 문지(門址·문이 있던 자리)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문왕 3년(683년) 왕궁의 북문에서 일길찬(17관등 가운데 7번째 등급으로, 육두품 이상이 오를 수 있음) 김흠운(金欽運)의 어린 딸을 왕비로 정하고 성대하게 맞이하였다’는 삼국사기 기록으로 미뤄보아 이번 도로유구의 발굴은 신라왕궁 북문의 위치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계림.

도로 서쪽 경계부는 잘 다듬어진 화강암으로 암거식(물을 대거나 빼기 위해 땅속이나 구조물 밑으로 낸 도랑) 배수로를 설치했으며, 통일신라 석교지와 연결되는 도로는 너비 20m 정도로, 잔자갈이 깔린 도로면 위에서는 수레바퀴 흔적도 확인됐다.

한편 경북문화재단 문화재연구원(원장 전규영)은 29일과 30일, 양 일에 걸쳐 라한셀렉트 경주에서 ‘발천, 신라왕경의 옛물길’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연다. 발천의 발굴조사 현황과 성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앞으로의 복원 정비를 위한 방향과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다.

첫날인 29일에는 신라왕경과 왕궁, 발천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발천 발굴조사 성과, 신라왕경의 홍수와 치수 등 4건의 주제발표가 진행된다. 다음날인 30일에는 신라왕경의 배수 체계를 통해 본 발천의 의의, 중국 수당(隨唐) 시기 장안성의 수리 시스템 연구 개술 등 6건의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진다. 문화재청 유튜브로 발굴 현장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경주시와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과 함께 지난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온라인 발굴 현장 공개(경주 황남동 120-2호분)를 진행한 바 있다.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하나인 이번 발천 발굴 현장 공개와 학술대회 역시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국민을 위해 온라인(유튜브)을 통해 볼 수 있게 기획됐으며, 앞으로도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복원 정비사업의 추진 과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널리 알릴 예정이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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