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100년전 내연기관차에 밀렸던 패자 '전기차의 부활'
컬럼비아 일렉트릭 빅토리아 페이튼
1902년 루스벨트 美 대통령의 전기차
20볼트 배터리 무게만 360kg에 달해
당시만 해도 마차 대신할 기술로 선봬
1990년대 미국의 GM도 전기차 도전
정유재벌들의 로비로 대중화 좌절도
100년간 군림하던 내연차 내리막길
내연기관 없는 '전기차의 시대' 열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포맷 전쟁의 가장 유명한 사례가 나온다. 197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 동안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의 표준을 두고 소니의 베타맥스와 JVC의 VHS 방식이 싸웠던 일이다. 유럽의 필립스도 ‘비디오 2000’이라는 포맷을 들고나왔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화질이 상대적으로 좋았지만 녹화시간이 1시간밖에 되지 않았던 소니의 베타맥스는 영화 한 편으로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2시간짜리 VHS와 격돌하면서 결국 영화사들이 어느 형식을 선택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특히 극장에서 상영하기 힘든 심한 폭력물이나 포르노 영화들이 VHS 형식에 담겨 보급되면서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고 결국 승자가 되었다.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1960년대에는 오디오 카세트테이프의 표준을 두고 또 그렇게 경쟁했다. 이때는 유럽의 필립스가 (우리가 아는) 카세트테이프를 들고나와서 세계를 정복했고, 경쟁자였던 에이트(8) 트랙 카세트는 영미권에서만 인기를 끌다가 사라졌다.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에디슨의 축음기 전쟁이 있었다. 에디슨은 왁스를 바른 원통에 홈을 파서 음악을 녹음하는 방식을 상업화했지만, 에밀 베를리너는 원반(디스크) 형태를 들고나와 에디슨과 대결했다.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다.
세상에 없던 물건이 나오거나, 지배적이던 기존 기술의 한계가 나타나면서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그 기술을 사용할 소비자나 기업들은 여러 개의 제품 혹은 형식(포맷)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품을 사는 사람이나, 그 제품에 자신의 콘텐츠를 담는 기업들은 일종의 투자를 하는 셈이다. 자신이 비싼 돈을 주고 산 오디오가 플레이할 수 있는 음반 종류가 많지 않다는 것은 투자 실패다. 게다가 그 제품이 사용되는 환경에 필요한 각종 기반 서비스와 인프라 역시 대규모 투자다. 따라서 표준이 정해지고, 채택되지 못한 기술이 사라지는 것은 자원 낭비를 막고 산업 전체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중요한 프로세스인 셈이다.
2021년 현재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9일에 개막한 상하이 모터쇼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이후 전 세계 주요 모터쇼가 취소, 연기된 상황에서 개최된 유일한 대형 모터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여기에 등장한 자동차들의 절반이 전기차라는 사실이다. 행사가 열리는 중국이 세계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재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와 내연기관 자동차, 그리고 그 둘이 조합된 버전의 구동기술들이 각축을 벌이는 표준화 전쟁을 겪고 있는 중이다. 지난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자동차=내연기관 차’라는 상식이 무너지고 있고, 그 뒤를 이어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내연기관 자동차에 반기를 든 것은 일본 기업, 특히 도요타 자동차가 들고나온 하이브리드였다. 엔진(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함께 사용된다고 해서 혼종, 즉 하이브리드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 기업 테슬라가 엔진 없이 100% 전기모터만으로 달리는 자동차로 인기를 끌면서 미래 자동차 표준화 전쟁이 시작된 거다. 특히 기후위기로 화석연료 자체에 거부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대형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모터를 쓰나 배터리 충전 방식이 아닌 수소를 사용해 전기를 만드는 수소 전기차를 들고나오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순수 전기차가 차세대 표준이 되는 분위기다.
물론 당시에는 요즘 사용되는 방식인 내연기관으로 만든 자동차도 나와서 함께 경쟁하고 있었다. 포드 자동차의 ‘모델 T’는 이미 1908년에 생산에 들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내연기관 자동차는 증기기관에 비해 큰 단점이 있었다. 시동을 걸 때마다 자동차 앞에서 힘겹게 크랭크를 돌려야 했고, 회전하는 크랭크에 부딪혀 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날 만큼 위험했다. 그에 반해 증기기관 자동차는 오랜 예열이 필요했지만 훨씬 조용하고 안정적이었다. 물론 자동차 후드 밑에서 불꽃이 물을 끓이고 있다는 건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프트 대통령이 증기기관을 사용한 자동차를 선택했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전기차, 증기기관차, 내연기관차 중 어떤 방식이 승리해서 표준이 될지 알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혼전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00년 전에 일어난 자동차 기술 표준 전쟁에서는 엔진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내연기관이 최종 승자가 되어 지난 한 세기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제 내연기관 자동차의 세기가 빠르게 끝나가고 있다. 세계는 이미 전기자동차를 다음번 승자로 낙점한 듯한 분위기다. 100년 전 패자가 부활한 셈이다.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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