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일상 속 문화사] 100년전 내연기관차에 밀렸던 패자 '전기차의 부활'

조성민 2021. 4. 2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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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자동차의 표준전쟁
컬럼비아 일렉트릭 빅토리아 페이튼
1902년 루스벨트 美 대통령의 전기차
20볼트 배터리 무게만 360kg에 달해
당시만 해도 마차 대신할 기술로 선봬
1990년대 미국의 GM도 전기차 도전
정유재벌들의 로비로 대중화 좌절도
100년간 군림하던 내연차 내리막길
내연기관 없는 '전기차의 시대' 열려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왼쪽)이 전기자동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최초로 탄 자동차는 전기자동차였다.
흔히 ‘포맷 전쟁(format war)’이라고 부르는 표준화 싸움은 몇십년마다 한 번씩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나타난다. 가장 가까운 사례로 고화질 DVD 포맷 전쟁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거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 DVD 기술이 한층 더 발전하면서 같은 사이즈의 디스크에 고화질(high-definition) 영상을 담기 위해 몇몇 기업들이 자신들만의 저장 방법을 개발했다. 도시바를 중심으로 한 HD DVD 진영과 소니를 중심으로 한 블루레이(Blu-ray) 진영이 나뉘어 경쟁했고, 시장은 블루레이를 선호하면서 2008년에 도시바가 백기를 들고HD DVD를 포기했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포맷 전쟁의 가장 유명한 사례가 나온다. 197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 동안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의 표준을 두고 소니의 베타맥스와 JVC의 VHS 방식이 싸웠던 일이다. 유럽의 필립스도 ‘비디오 2000’이라는 포맷을 들고나왔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화질이 상대적으로 좋았지만 녹화시간이 1시간밖에 되지 않았던 소니의 베타맥스는 영화 한 편으로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2시간짜리 VHS와 격돌하면서 결국 영화사들이 어느 형식을 선택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특히 극장에서 상영하기 힘든 심한 폭력물이나 포르노 영화들이 VHS 형식에 담겨 보급되면서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고 결국 승자가 되었다.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1960년대에는 오디오 카세트테이프의 표준을 두고 또 그렇게 경쟁했다. 이때는 유럽의 필립스가 (우리가 아는) 카세트테이프를 들고나와서 세계를 정복했고, 경쟁자였던 에이트(8) 트랙 카세트는 영미권에서만 인기를 끌다가 사라졌다.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에디슨의 축음기 전쟁이 있었다. 에디슨은 왁스를 바른 원통에 홈을 파서 음악을 녹음하는 방식을 상업화했지만, 에밀 베를리너는 원반(디스크) 형태를 들고나와 에디슨과 대결했다.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거다.

세상에 없던 물건이 나오거나, 지배적이던 기존 기술의 한계가 나타나면서 새로운 기술들이 쏟아져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그 기술을 사용할 소비자나 기업들은 여러 개의 제품 혹은 형식(포맷)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품을 사는 사람이나, 그 제품에 자신의 콘텐츠를 담는 기업들은 일종의 투자를 하는 셈이다. 자신이 비싼 돈을 주고 산 오디오가 플레이할 수 있는 음반 종류가 많지 않다는 것은 투자 실패다. 게다가 그 제품이 사용되는 환경에 필요한 각종 기반 서비스와 인프라 역시 대규모 투자다. 따라서 표준이 정해지고, 채택되지 못한 기술이 사라지는 것은 자원 낭비를 막고 산업 전체가 효율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중요한 프로세스인 셈이다.

2021년 현재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9일에 개막한 상하이 모터쇼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이후 전 세계 주요 모터쇼가 취소, 연기된 상황에서 개최된 유일한 대형 모터쇼로 큰 관심을 끌고 있는데, 흥미로운 건 여기에 등장한 자동차들의 절반이 전기차라는 사실이다. 행사가 열리는 중국이 세계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재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와 내연기관 자동차, 그리고 그 둘이 조합된 버전의 구동기술들이 각축을 벌이는 표준화 전쟁을 겪고 있는 중이다. 지난 100년 넘게 이어져 온 ‘자동차=내연기관 차’라는 상식이 무너지고 있고, 그 뒤를 이어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기술들이 쏟아지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내연기관 자동차에 반기를 든 것은 일본 기업, 특히 도요타 자동차가 들고나온 하이브리드였다. 엔진(내연기관)과 전기모터가 함께 사용된다고 해서 혼종, 즉 하이브리드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 기업 테슬라가 엔진 없이 100% 전기모터만으로 달리는 자동차로 인기를 끌면서 미래 자동차 표준화 전쟁이 시작된 거다. 특히 기후위기로 화석연료 자체에 거부감을 갖기 시작하면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대형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모터를 쓰나 배터리 충전 방식이 아닌 수소를 사용해 전기를 만드는 수소 전기차를 들고나오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 순수 전기차가 차세대 표준이 되는 분위기다.

흔히 전기자동차가 최근에 등장한 신기술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GM이 전기자동차를 양산했었다. 이때 나온 전기차를 정유 재벌들의 로비가 죽였다는 이야기는 ‘누가 전기차를 죽였나(Who Killed the Electric Car)’라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이미 1900년대 초에 전기 자동차는 마차를 대신할 기술로 이미 세상에 선을 보인 상태였다. 1902년 8월22일,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코네티컷주 하트포트에서 전기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했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이 탄 전기차는 컬럼비아 일렉트릭 빅토리아 페이튼으로 20볼트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었다. 배터리 무게만 360㎏에 달해 차 전체 중량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당시만 해도 전기차는 다른 동력방식과 씩씩하게 경쟁 중이었다.
1909년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차량 위 오른쪽)은 증기기관을 사용하는 ‘모델 M’을 대통령 차량으로 사용했다.
다른 경쟁차들 중에는 증기기관(스팀 엔진), 즉 외연기관을 사용한 차량도 있었다. 내연기관과 외연기관은 말 그대로 불꽃이 엔진 내부에 있느냐, 외부에 있느냐로 구분되는데, 증기기관은 밖에서 불을 피워서 보일러 속의 물을 끓이고, 거기에서 나오는 스팀의 힘으로 바퀴를 움직인다. 즉, 증기기관차를 자동차 형태로 만든 것이다. 1909년 미국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한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했던 장본인이다)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직접 자동차를 타고 퍼레이드를 했는데, 그가 선택한 차는 화이트 모터 컴퍼니의 ‘모델 M’이라는 증기기관 자동차였다.

물론 당시에는 요즘 사용되는 방식인 내연기관으로 만든 자동차도 나와서 함께 경쟁하고 있었다. 포드 자동차의 ‘모델 T’는 이미 1908년에 생산에 들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내연기관 자동차는 증기기관에 비해 큰 단점이 있었다. 시동을 걸 때마다 자동차 앞에서 힘겹게 크랭크를 돌려야 했고, 회전하는 크랭크에 부딪혀 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날 만큼 위험했다. 그에 반해 증기기관 자동차는 오랜 예열이 필요했지만 훨씬 조용하고 안정적이었다. 물론 자동차 후드 밑에서 불꽃이 물을 끓이고 있다는 건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프트 대통령이 증기기관을 사용한 자동차를 선택했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전기차, 증기기관차, 내연기관차 중 어떤 방식이 승리해서 표준이 될지 알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혼전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100년 전에 일어난 자동차 기술 표준 전쟁에서는 엔진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내연기관이 최종 승자가 되어 지난 한 세기를 지배했다. 그리고 이제 내연기관 자동차의 세기가 빠르게 끝나가고 있다. 세계는 이미 전기자동차를 다음번 승자로 낙점한 듯한 분위기다. 100년 전 패자가 부활한 셈이다.

박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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