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검찰총장 추천위의 ‘반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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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 아닌 상식의 소리 내야 朴정부도 추천위 소신 못 이겨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오는 29일 열린다. 총장 후보추천위가 후보를 3명 정도로 압축하면 박범계 법무장관이 그중 한 명을 골라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게 된다. 물론 청와대와 사전 협의를 거칠 것이다. 지금 법조계 관심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추천위가 압축한 후보군에 들어간 뒤 총장까지 될지에 쏠려 있다.
이 지검장이 대표적 친여(親與) 검사로 꼽히는 것은, 그가 대통령 부부의 대학 후배란 배경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거쳐온 자리에서 정권 의중을 충실히 자기 업무에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중 하나가 지금 이성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지검장은 후배 검사로부터 곧 기소를 당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2019년 6월 안양지청이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를 ‘김학의 전 차관 허위 출금 서류 작성’ 혐의로 수사하려 하자 이를 무산시킨 혐의(직권남용)다. 대검 반부패부장이었을 때 일이었다. 검찰 내부에선 “이 지검장이 뭉갠 여러 사건 중 하나일 뿐”이란 말도 나왔다.
다급해진 이 지검장은 검찰수사심의위를 신청했고 조만간 열린다. 수사심의위는 외부 전문가가 특정 피의자의 수사·기소가 타당한지 심의하는 기구다. 그렇다고 검찰의 결론이 바뀔 것 같진 않다. 수원지검 수사팀과 대검은 일찌감치 ‘기소’ 결론을 내리고 시점을 조율해 왔다. 이 지검장의 고교 후배인 조남관 차장(총장 직무대행)도 같은 의견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이성윤이 총장 레이스에서 탈락했다고 보는 게 ‘상식(常識)’이다. ‘검찰에 기소된 현직 검찰총장’은 전무후무하다. 임명권자도 상당한 부담을 져야 한다. 그런데 그 ‘상식’을 뒤집는 듯한 발언이 지난주 박범계 장관에게서 나왔다. 차기 검찰총장의 기준으로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한 상관성’을 거론한 것이다. 대통령 말 잘 듣는 사람을 총장에 앉히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이 말에, 검찰 내부는 “설마 이성윤을?” 하며 술렁였다. 한 검사는 “‘김학의 기획 사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그대로 있는 걸 보면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제 공은 총장 후보추천위로 넘어간 상태다. 추천위 추천 절차는 대개 ‘요식행위’로 간주된다. 그러나 추천위원들이 거수기 역할을 거부하고 정권의 의도를 좌절시킨 사례는 근래에도 있었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인수위는 후보추천위가 압축하는 총장 후보군에 안창호 헌법재판관과 김학의 당시 고검장을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러나 일부 추천위원들의 완강한 반대로 이는 무산됐다. 안 재판관은 현직 헌법재판관이란 점에서 여론이 나빴고 김 고검장은 검찰 내부 평판이 안 좋았다. 법무부는 발칵 뒤집혔다. 후보추천위를 다시 여는 방법까지 생각했지만 결국은 포기했다고 한다. 정권 인수위의 서슬 퍼런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지만 ‘상식’을 갖고 버틴 추천위원들의 소신을 밟고 갈 수는 없었다. 권력이 상식을 못 이긴 것이다.
이번 후보추천위도 9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인 박상기 전 법무장관을 위시해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 이종엽 변협 회장, 한기정 로스쿨협의회 이사장(서울대), 정영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고려대),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 길태기 전 법무차관, 원혜욱 인하대 교수, 안진 전남대 교수가 참여한다. 이들 중에서도 ‘상식’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낼 이가 분명 나오리라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의 수준이 너무 참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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