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75] 기술이 궁극에 이르면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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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 뜨고 남은 연어를 새끼줄에 엮어 세로로 매달았다. 마치 사진처럼 정교한 이 그림은 19세기 말 일본 화가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1828~1894) 작품이다. 그는 왕실 화가로 임명되어 메이지 일왕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정작 일본을 떠나 유화를 배운 적은 없다.
에도 막부 말기에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던 다카하시는 반쇼시라베쇼(蕃書調所)에 입학하면서 유화를 본격적으로 연마하기 시작했다. 반쇼시라베쇼는 개항 직후에 에도 막부가 외교 문서 번역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외국어 학교로,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양학(洋學) 전문 기관으로 성장했다. 다카하시는 곧 개항지였던 요코하마로 이주하여 영국인 화가 찰스 워그먼에게 유화를 배우다, 메이지 유신 이후 설립된 고부(工部)미술학교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화가 안토니오 폰타네지 아래서 수학했다. 고부미술학교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공업 정책을 관장하던 공부성(工部省) 소속이었다. 요컨대 당시 다카하시가 배운 유화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개인의 내면을 표출하는 독창적 예술 수단이 아니라 실용 학문의 하나로 일본 정부가 서양 문물을 도입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육성한 기술이었다.
그림 속 선홍빛 생선 살은 여전히 싱싱하지만 남은 몸통의 비늘을 보니 꾸덕꾸덕하게 마르기 시작했다. 극도로 사실적인 생선과 밋밋한 벽에 드리운 그림자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이 세로로 비좁은 이 그림을 멀리서 흘낏 보면 실제 생선을 걸어둔 줄 알 것이다. 여느 유럽의 정물화와 유사하면서도 일본색이 확연히 느껴지는 이 그림은 기술이 궁극에 이르면 예술이 됨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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