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복권 수익 줄면 예산도 쪼그라져.. 장기대책 '그림의 떡' [심층기획 - 아동학대 '땜질 처방' 안 된다]

이보람 2021. 4. 26.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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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쥐꼬리 예산 등 과제 산적
예산 90%, 벌금·복권 수입서 충당
복지부 아동학대 예산은 42억에 그쳐
법무부 287억 기재부 86억 지원 불구
해마다 별도로 책정해 규모 '들쭉날쭉'
담당부처 달라 행정 효율성도 떨어져
지원 재원 논의 7년째 제자리
관련 법안 발의됐지만 여전히 계류 중
시민단체, 문제 해결 캠페인 나서기도
전문가들 "예산이 안정돼야 정책 효과
구조적인 개선 없으면 비극 반복될 것"

‘0.0005%.’

올해 보건복지부 전체 세출예산 중 아동학대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올해 초 정부가 아동학대 예방과 대응 관련 다양한 방안을 내놓은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를 포함한 아동학대 관련 예산의 90%가량은 벌금·복권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벌금·복권 수익이 줄어들면 관련 예산도 확 쪼그라드는 구조다. 매해 예산 규모가 바뀌다 보니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중장기 정책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천 아동학대 사건(일명 정인이 사건)’ 이후 예산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쥐꼬리’ 아동학대 예산의 90%는 벌금·복권 수입

26일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아동학대와 직접 관련이 있는 전체 예산은 416억원이다. 복지부와 법무부, 기획재정부 3개 부처에서 책정한 아동학대 대응 및 예방 등에 관한 예산이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의 90%는 주무부처인 복지부 예산이 아니다. 법무부의 범죄피해자보호기금 287억3600만원, 기재부의 복권기금 86억5500만원이 전체 아동학대 예산의 90%를 차지한다.
복지부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42억원에 불과하다. 42억원은 복지부 아동·청소년 관련 예산(2조5943억원)의 0.16%, 복지부 전체 세출예산(88조9761억원)의 0.0005%에 불과한 것이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범죄자들이 낸 벌금에서 8%씩 떼서 적립한다. 문제는 벌금 수납액이 들쭉날쭉한 데다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이다. 2015년 1조3490억원이었던 벌금수납액은 2019년 1조835억원으로 줄었다. 벌금을 사회봉사명령으로 대신할 수 있어 벌금수납액 자체가 크게 늘지 않을뿐더러 안정적이지도 않다.

복권기금도 지속가능한 안정 재원이 아니다. ‘복권 및 복권기금법’에 따르면 복권기금은 저소득층, 장애인,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피해여성, 불우청소년 등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과 다문화가족 지원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나 복권기금의 일정 비율을 아동학대 예산에 쓰도록 돼 있는 것도 아니다. 관련 위원회가 매년 학대피해 아동 보호 등에 쓸 예산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다른 소외계층 사업에 기금이 많이 배분되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재의 구조에서도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늘리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실제 올해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119억4200만원이 늘었다. 그러나 늘어난 예산의 약 31%는 시스템 운영 및 유지관리, 사이버교육 콘텐츠 개발, 한시 지원 용도로 편성됐다. 복권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학대피해아동 쉼터 예산은 46% 증가했다. 쉼터를 76개소에서 91개소로 늘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복권 판매수익이 2조6208억원으로 2005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기금을 담당하는 부처가 다르다 보니 행정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두 기금 모두 복지부 소관이 아니어서 예산 심의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받지 않는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복권기금은 기획재정위원회가 소관 상임위다. 아동학대를 줄이기 위한 ‘중장기정책’을 내놓는 게 ‘어불성설’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원재원 바꿔야 한다는 지적에도 논의는 7년째 제자리

아동학대 관련 예산의 구조로 정책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최혜영 의원은 “2014년 아동학대의 국가적 책임을 강화하겠다며 지방이양사업이었던 아동학대 예산을 국가보조사업으로 전환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복지부 사업이 아닌 법무부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기재부 복권기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정식 회계 예산에 넣거나 그게 어렵다면 복지부 차원에서 관련 기금을 신설하자고 주장한다. 안정적인 예산이 확보돼야 인력 충원이나 전문성 강화 등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고, 각 사례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법안도 발의가 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정부가 아동학대를 막겠다며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그를 뒷받침하고 실현할 예산에서는 이러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심지어 아동보호를 위한 예산은 전체 규모에서 비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아동학대를 포함한 아동보호 관련 예산이 복지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감소해 2015년 0.66%에서 올해 0.43%로 줄었다.

미국은 학대의 정도, 아동과 부모의 관계, 부모의 사회·경제적 상황 등을 고려해 가정마다 서로 다른 교육·심리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기관 인력 비중이 높은 데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 지원 규모도 상당해서다.
미국에선 1명의 공공 인력이 한 달 평균 6건의 아동학대 사례를 담당한다. 예산은 학대아동 1인당 약 43만원(397달러)이 쓰인다. 한국은 공공 인력 1명이 14건의 사례를 처리하고, 아동 1인에게 2064원이 배정된다. 김 교수는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 한 비극적인 사건은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비정부단체도 나섰다.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최근 ‘#당신의 이름을 보태주세요’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충분한 예산과 인력, 인프라 등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피해 아동과 가정이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 확보 △아동학대 예방 예산의 안정성을 위한 복지부 일반 예산으로 전환 △229개 시·군·구마다 보호전문기관 설치 △아동보호 체계에서 일하는 전문가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모인 서명은 정부와 국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매번 제시된 아동학대 대응의 주된 내용은 가해자의 처벌 강화, 신고의무자 확대, 미신고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 아동학대 업무 담당자의 권한 강화, 가해자의 조사 불응 행위에 대한 제재 강화였다”며 “더 이상 미안한 어른, 미안한 대한민국이 되지 않도록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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