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건져올린 기억 어루만지는 '작은 순례'

배문규 기자 2021. 4. 2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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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4·16재단 공동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념전 '진주 잠수부'

[경향신문]

세월호 7주기 추념전 ‘진주 잠수부’는 합동 분향소가 있던 경기도미술관 앞마당에서 기억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는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위 사진부터 박선민의 ‘그리면서 지워지는 선’, 이소요의 ‘콜로포니’, 박다함의 ‘2013.12.20.-2014.11.24.’. 경기도미술관 제공
희생자 분향소 자리했던 미술관
주차장 입구부터 내부까지 거닐면
작가 9명의 13개 작품을 만난다
곁을 맴도는 슬픔 같은 동그라미
신나는데 울컥하는, 7년 전 음악…
여전히 남아있는 아픔이 떠오른다

경기도미술관이 자리한 화랑유원지 주차장에는 2018년 4월 철거 전까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4년 동안 있었다. 수많은 추모의 발길, 그리고 노란 리본의 흔적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분향소 기둥을 심었던 바닥에는 새로이 아스팔트를 깔았다. 반듯한 흰 선을 새로 칠한 주차장에는 나들이 차량만 드나들게 됐다. 그 참사와 추모의 기억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았을까.

경기도미술관과 4·16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세월호 참사 7주기 추념전 ‘진주 잠수부’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애도의 과정과 그 마무리를 성찰하는 전시다.

‘진주 잠수부’는 한나 아렌트가 발터 벤야민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에세이의 소제목에서 가져온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벤야민은 나치의 박해를 피해 탈출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렌트는 친구를 떠나보내야 했던 부조리와 슬픔 속에서도 그가 세상에서 잊히는 것을 두려워했다. ‘진주 잠수부’는 벤야민의 깊은 사유를 뜻하는 한편, 그의 진주 같은 생각들이 바다 위로 건져 올려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세월호의 슬픔 역시 눈에 보이진 않아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작가 9명(팀)이 선보이는 13개 작품은 분향소가 있던 미술관 앞마당에 새겨진 기억들을 다시 그려낸다. 과거의 것들이 오래 기억되어 먼 미래에도 그 의미를 건져 올릴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저마다 기억을 어루만지며 작은 순례를 떠날 수 있는 전시다. 주차장 입구 언메이크랩 ‘바닥 추모비’에서 시작해 미술관 내부 김지영의 ‘붉은 시간’까지 노란 표지판을 따라 찬찬히 거닐면 된다. 박선민의 ‘그리면서 지워지는 선’은 슬픔의 모양과 재료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정작 작품은 보이지 않는다. 표지판의 스마트폰 QR코드를 찍으면 비로소 영상이 재생된다. 작가가 떠올린 슬픔의 모양은, 그로부터 도망치고 싶어도 지속되는 고통으로 인해 같은 장소를 맴도는 여러 겹의 동그라미가 됐다. 슬픔의 재료는 끝없이 솟아나는 눈물과 한없이 깊은 바닷물의 결정체, 소금이다. 영상 속 차량이 소금으로 그렸다가 다시 지우는 선은 분향소가 있던 자리를 맴돈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모양만 변할 뿐이다.”

최평곤의 ‘가족’. 경기도미술관 제공

이소요의 ‘콜로포니’는 전국 각지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해 작은 종을 만든 시적인 작업이다. 송진은 소나무의 상처에서 나와 굳어지면 영롱한 호박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송진을 정제하고 태우고 녹여서 얻은 콜로포니라는 수지로 99개의 종을 만들고, 여기에 유리 종 하나를 더해 소나무 가지에 매달았다. 작업은 개막식날 바이올리니스트가 작가가 얻은 콜로포니로 만든 로진을 활에 바르고 음악을 연주하는 퍼포먼스로 완성됐다. 상태는 변해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한다.

박다함의 ‘2013.12.20.-2014.11.24.’은 아무렇지 않게 마음을 울리는 작업이다. 대중음악 디제이로도 활동하는 작가는 여러 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사운드 시스템을 야외에 설치했다. 여기서 플레이되는 사운드는 제목대로 2014년의 대중음악이다. 각종 차트 1위 곡 목록을 믹스해 재생한다. 노래는 신나는데 울컥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사랑했던 노래들은 우리를 과거의 그 시간으로 이끈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아이들의 설렘,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던 우리들의 기억이 중첩되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야외 조각공원 끄트머리에는 최평곤의 ‘가족’이 있다. 작가는 대나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친근한 형상의 거대 조각을 만들었다. 9m가 넘는 거대한 인간이 아이를 안은 채 서 있고, 양쪽에도 아이가 함께 있다. 머리에는 까치집이 생겼다. 2007년 설치된 이후 주변의 나무와 같이 자라고 변화하는 세월을 그대로 겪어 왔다. 단순하고 고요한 형태로 제자리를 지켜온 셈이다. 저수지 너머 가족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단원고가 있다. 전시는 7월25일까지.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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