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이 없지 콘텐츠가 없냐?

홍진수 기자 2021. 4. 26. 22: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디즈니' 상륙 앞둔 국내 OTT 시장, 한국 업체들의 생존 전략

[경향신문]

넷플릭스 월 사용자 수 ‘1001만’
한국 플랫폼 5개의 총합과 비슷
지난해 국내 시장 7801억 규모
웨이브·티빙·왓챠 ‘빅3’는 적자
체급 차 확연…쿼터제 논의도
‘킹덤’ 등 전 세계 흥행몰이했듯
자체 콘텐츠 제작 땐 경쟁 가능
각 사 앞다퉈 ‘투자 강화’ 발표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국내 OTT(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 앱 시장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넷플릭스의 월사용자수(MAU)는 1001만3283명이다. 그 뒤를 ‘토종 OTT 업체’인 웨이브(394만8950명), 티빙(264만9509명), U+모바일tv(212만6608명), 시즌(168만3471명), 왓챠(138만5303명) 등이 순서대로 따라갔다. 넷플릭스 한 곳의 월간 이용자가 토종 OTT 플랫폼 다섯 곳을 합친 수와 맞먹는다.

2014년 1926억원이었던 한국 OTT 시장은 지난해 7801억원으로 4배가량 커졌다. 그러나 정작 한국 시장에서 토종 OTT들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웨이브, 티빙, 왓챠 등 국내 ‘빅3’는 지난해 나란히 적자를 기록했다. 시장 확대로 매출은 늘어났지만, 3사 매출을 모두 합쳐도 넷플릭스에 미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감사보고서를 보면, 웨이브의 지난해 매출은 1802억원, 영업손실은 169억원이다. CJ ENM에서 지난해 10월 분사한 티빙은 지난해 4분기 매출 155억원, 영업손실 61억원을 기록했다. 왓챠의 지난해 연결기준 실적은 매출 380억원, 영업손실 155억원이었다. 반면 넷플릭스코리아 매출은 4155억원으로 2019년(1858억원) 대비 123.5% 증가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63억원으로 전년(12억원)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지난 2일 웨이브는 공지사항을 통해 <겨울왕국> <토이스토리> <어벤져스> 등 디즈니의 콘텐츠 100여개를 다음달부터 서비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디즈니가 콘텐츠 공급 연장계약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세계적인 OTT 업체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진출을 앞두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전작업을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디즈니플러스는 2019년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에도 경쟁업체인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철수했다.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데, 조만간 디즈니플러스도 한국에 진출한다. 한국의 OTT 업체들은 앞으로 세계 1·2위 업체와 동시에 싸워야 한다. 정부도 고민이 깊다. 시장에만 맡겨놓기에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와 토종 OTT 간 ‘체급 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경쟁은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지난달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울 중구에 있는 서울중앙우체국에서 ‘인터넷동영상 서비스 법제도 연구회’ 3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OTT 저작권·저작인접권 관련 이슈와 함께 유럽의 콘텐츠 쿼터제 제도화 현황 등이 논의됐다. 지난해 7월 연구회 발족 후 처음으로 ‘OTT 콘텐츠 쿼터제’가 논의 대상으로 올라왔다.

유럽연합(EU)은 2018년 넷플릭스, 아마존프라임 등 미국 OTT 플랫폼에 맞서 시청각서비스지침을 개정했다. 자국 콘텐츠 의무 편성 비율을 규정하는 ‘쿼터제’를 도입했다. 프랑스, 헝가리, 독일, 덴마크 등이 이에 따라 쿼터제를 규정하는 입법을 마쳤다. 프랑스는 OTT의 서비스 목록 중 유럽제작물을 50% 이상, 프랑스어 콘텐츠는 35% 이상 할당했고, 3년 후부터는 그 비율을 각각 60% 이상, 40% 이상 상향 적용할 예정이다.

이 제도는 극장에서 특정 영화를 정한 비율만큼 상영하도록 하는 스크린 쿼터제와 유사하다. 한국도 1966년 스크린 쿼터제 법제화 이후 연간 국내 영화 상영일 수를 73일로 강제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스크린 쿼터제는 한국의 영화산업을 보호하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러나 OTT 쿼터제를 당장 도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수혜 대상으로 여겨지는 토종 OTT 업체도 쿼터제를 반기지만은 않는다. 일단 큰 효과가 있을지 미지수다. 이미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 제작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킹덤> <스위트홈> 등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드라마들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넷플릭스가 판권을 사들인 영화 <승리호>는 공개 28일 만에 전 세계 2600만가구의 선택을 받았다. OTT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자국 콘텐츠보다 할리우드 콘텐츠가 많이 소비되지만, 한국은 다르다”며 “현재 시점에서는 규제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 비율을 맞추기 위해 전체 콘텐츠 수를 줄이는 방법도 있어, 되레 이용자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며 “시장의 상황을 보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남은 것은 토종 OTT들이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가장 어려운 길이지만,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한국 시장에서 이용자들의 자국 콘텐츠 선호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웨이브는 지난 2월26일 “2025년까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즌’을 운영하고 있는 KT도 지난달 23일 그룹의 미디어 콘텐츠 전략을 발표하면서 2023년까지 원천 지식재산권(IP) 1000개 이상, 드라마 IP 100개 이상의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티빙은 2023년까지 콘텐츠 제작과 OTT 강화에 4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넷플릭스의 올 한 해 한국 투자액(5500억원)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토종 OTT들도 그대로 주저앉을 기세는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앞서나가고 있지만 국내 업체들도 계속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려가는 상황”이라며 “기존의 방송, 영화 등에 더해 특화된 콘텐츠를 만들어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