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합병 뒤 오를 게 뻔한 '비행기 운임' 제동장치 시급

윤지원 기자 2021. 4. 26. 21:4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한선 삼는 공시운임 이미 '최고'
그마저 증편 등 이유로 변경 가능
점유율 높은 노선은 경쟁 의미 없어
공정위·국토부, 법령 협의 필요

[경향신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기업결합을 심사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단하는 주요 쟁점 중 하나는 양사 결합으로 인해 ‘비행기 요금’이 오를지 여부다. 대한항공은 ‘인위적인 항공 운임료 인상은 없다’고 공언했지만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여지가 큰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선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가격 인상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정위는 양사의 합병에 따라 경쟁제한 우려가 초래되는 시장이 어디인지를 획정하는 용역 연구 결과를 토대로 운임료 인상 등 경쟁제한 요소를 들여다볼 방침이다. 관련 연구 진행이 늦춰지면서 당초 7월로 전망된 최종심사 결과는 연말쯤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대한항공은 항공 운임은 정부로부터 인가받은 ‘상한선’ 가격 이하로만 정해야 한다는 점과 ‘완전경쟁’에 가까운 전 세계 항공 시장에서 일방적 운임 인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들면서 합병 이후 항공료 인상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주장에 ‘맹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토교통부가 인가한 ‘상한선’인 공시운임은 그간 항공사들이 비즈니스 좌석을 늘리거나 노선을 증편할 때 근거자료를 제출하며 변경을 신청해왔다. 합병 후 공시운임 인상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통합으로 운항편수 점유율 100%가 되는 인천~로스앤젤레스 노선도 별도 인가 없이 요금 인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행 상한선이 실제 판매 금액보다 높게 설정됐기 때문이다. 인천~댈러스의 이코노미 Y등급 왕복 공시운임은 475만원인데 오는 5월 기준 항공료는 284만원으로 191만원 차이가 난다. 원론적으론 최소 40% 인상할 재량이 있다는 얘기다. 국토부가 이 같은 ‘상한선’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판단 기준은 다소 추상적이다. 항공사업법이 제시하는 기준은 ‘적정한 이윤 범위를 초과하지 아니할 것’ ‘여행객 이용을 매우 곤란하게 하지 아니할 것’ ‘다른 사업자와의 부당한 경쟁을 일으킬 우려가 없을 것’ 등이다.

외국 항공사와 ‘완전경쟁’인지 여부도 직항 선호도·운항 빈도 등을 고려하면 상황에 따라 다르다. 미국 교통통계국(BTS) 자료를 보면 2019년 12월 기준 인천~샌프란시스코 왕복 노선은 대한항공(2만9273명)과 아시아나(1만7532명)의 승객 점유율이 77%(4만6805명)로 유나이티드항공 22%(1만3164명)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는 소비자들이 비수기 기준 주 7회 운항에 그치는 유나이티드항공 대신 매일 2회씩 주 14회 운항하는 대한항공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독자노선의 운임이 거리가 비슷한 경쟁 노선 대비 더 높은 예도 있다. 오는 5월 평일 기준 경쟁사들이 있는 인천발 뉴욕행 항공 요금은 177만원인 반면, 대한항공 독자노선인 인천발 워싱턴행은 191만원으로 14만원가량 비싸다. 두 노선의 거리 차이는 83㎞에 불과하다. 대한항공 독점이던 인천~몽골 울란바토르 노선에 2019년 7월 아시아나항공이 취항하면서 대한항공 운임이 낮아진 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승인해도 항공료 인상은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2005년 하이트·진로 기업결합처럼 가격 인상을 5년간 제한하는 시정조치를 내리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며 “공정위와 국토부가 관련 법령을 놓고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금 인상 우려 등으로 항공사 간 기업결합이 불허된 전례도 있다. 2011년 유럽연합(EU)의 그리스 국적항공사 에게항공과 올림픽항공 기업결합 무산이 그 예다. 2013년 미 법무부는 아메리칸항공과 US에어웨이가 합병하면 가격경쟁 유인이 사라진다며 결합 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운임 관련 소비자 편익 향상을 도모하고 정부의 모니터링에도 적극 협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