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에게 어떤 냄새 났나" 무례한 질문에 "난 개가 아니다"
[경향신문]
날카로운 농담으로 응대해
유럽인 ‘여영·유정’ 잘못 발음
위트 있게 꼬집어 좌중 폭소
“냄새를 맡지 않았어요. 저는 개가 아닙니다.”
배우 윤여정씨의 ‘뼈 있는 농담’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빛을 발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25일(현지시간)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윤씨는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직후 현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대에서 내려오며 대화한 브래드 피트에게 어떤 냄새가 났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했다.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질문 자체의 무례함을 드러내는 날카로운 농담이었다. 앞서 영화 <미나리>로 거쳐온 각종 시상식·인터뷰를 통해 서구 사회의 인종차별적 태도를 유쾌하게 꼬집었던 유머 감각은 아카데미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윤씨는 이날 수상 소감에서도 “아시다시피 나는 한국에서 왔고, 윤여정이다. 유럽인들은 제 이름을 여영이나 유정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오늘만은 여러분 모두 용서하겠다”고 해 객석을 웃겼다. 아시아인들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는 서구인들의 태도를 넌지시 지적한 것이다. 그는 시상식 이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람을) 남성 혹은 여성, 백인과 흑인 또 황인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라고 한층 직설적으로 다양성의 가치를 옹호하기도 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윤씨의 촌철살인 농담은 지난 11일 영국 아카데미(BAFTA) 시상식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당시 윤씨는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에서 “모든 상이 의미있지만 이 상은 고상한 척하는 영국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기자들에게 “아시아 여성으로서 나는 이 사람들(영국인)이 고상한 체한다고 느꼈고, 그게 내 솔직한 느낌”이라며 발언의 의도를 부연했다. 지난 12일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두 아들이 시상식 참석을 위해 미국에 가는 나를 걱정하고 있다”고 말해, 미국 내에서 확산하는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에 대한 비판과 우려를 표현하기도 했다.
윤씨가 던지는 돌직구는 성역이 없어 짜릿하다. 일찍이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어른이라고 해서 꼭 배울 게 있느냐” 등 발언으로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를 비판해 온 그는 <미나리>가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선 “사실 이 영화 안 하고 싶었다. 고생할 게 뻔하기 때문”이라며 열악한 독립영화 현장의 문제를 드러냈다.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밖에 나가서 일하게 만든 두 아들, 너무 감사하다. 덕분에 열심히 일을 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고 말하며 ‘워킹맘’으로서 겪은 현실적 고충과 그 속에서도 이뤄낸 성취에 대한 자신감을 솔직하게 보여줬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새로운 길 뚫은 55년차 배우 “다른 배우보다 운이 좋았을 뿐”
- “윤여정은 수십년간 한국 영화계의 센세이션”
- 유색인종 여성 첫 감독상…‘차별 지우기’ 한 걸음 나선 오스카
- 두 곳으로 나뉜 시상식장…코로나 검사 3번 받고, 로테이션 입장
- 윤여정, 한국 배우 첫 오스카 거머쥐다
- 국세청장 후보자 처가일가, 매출 8000억원대 가족기업 운영···“이해충돌 소지”
- 성폭행·고문·장기 적출 위험에 노출된 사하라 사막 난민들
- [국대 감독선임 막전막후] 돌고 돌아 홍명보,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 ‘난 태국인이야’ 블랙핑크 리사의 진화···K팝 스타에서 팝스타로
- 검찰, 김건희·최재영 면담 일정 조율한 대통령실 ‘여사팀’ 행정관 소환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