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일성 회고록 소동, 시대착오적 국가보안법 손봐야 할 이유
[경향신문]
교보문고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판매를 중단했다. 책을 구매하는 고객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교보문고 측은 “해당 출판물을 갖고 있던 사람이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이 책은 김 주석의 출생부터 해방 전 항일무장투쟁 기간을 다뤘다. 김 주석 생존 당시에 5권, 사후에 3권이 북한 조선노동당출판사에 의해 출간됐다. 국내에서는 한 출판사가 북한의 원전을 그대로 옮겨 8권 세트로 지난 1일 출간했다.
북한 최고 지도자의 육성이 TV로 생중계되는 시대다. 유튜브엔 북한 관련 동영상과 정보가 넘친다. 시민들은 북한 권력 세습의 문제점과 경제 실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혹자들은 이 책이 북한의 권력자를 미화하고 현대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잘못된 주장을 받아들여 퍼뜨릴 것을 경계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보수당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도 “김일성 회고록은 상당 부분 허구인데 미사여구를 동원했다고 해서 우상화 논리에 속아넘어갈 국민은 없다”며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통제해야 한다는 건 국민을 유아 취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번 옳은 말이다. 시민의 성숙함을 믿고 이젠 북한의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사회의 문화 수준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가 사상·표현의 자유다. 이번 사건은 국가보안법이 시민의 자유를 얼마나 위축시키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던 치안유지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은 이 법을 민주 인사들을 탄압하는 도구로 악용했다. 특히 이 법 제7조(찬양·고무 등)는 무고한 시민들을 보안 사범으로 몰아가고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소 조항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이나 세월호 유족들의 시위에 색깔을 덧씌우는 구태가 반복되는 것도 이 법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낸 <세기와 더불어>의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재판이 27일 진행된다. 법원은 사상·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케케묵은 이 법에 의존하려는 기도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를 적극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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