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금융당국, '가상통화 제도화' 열린 자세로 접근해야
[경향신문]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가상통화 거래소 200개가 있지만 다 폐쇄될 수 있다”고 하자 청와대 게시판에 그의 사퇴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은 위원장 발언의 영향으로 다음날 가상통화 가격이 폭락하자 투자자들이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은성수 위원장 자진사퇴를 촉구한다’는 국민청원에 사흘 만에 13만여명이 동의했다. ‘비트코인 좀 그만 건드리세요. 한국의 20~30대는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합니까’ 청원에도 사흘 만에 3만5000여명이 서명했다. 은 위원장의 발언은 9월부터 시중은행과 손잡지 않은 대다수 거래소의 영업이 불가능해진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거래소 퇴출 과정에서 다수 투자자가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취지였으나 ‘전 거래소 폐쇄’ 등 으름장을 놓는 식의 발언이 코인에 투자한 젊은이들을 자극한 것이다.
국내 코인거래소는 200여개, 2월 기준 실명 인증 계좌만 250만개에 달하며 하루 거래량이 20조원에 가깝다. 투자 거래대금이 주식시장 거래대금을 웃돌 정도로 커졌다. 20~30대 투자자의 비중이 60%에 달하는 ‘청년들의 투자시장’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도 하루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거래가 이뤄진다. 이쯤 되면 제도권 내 거래 여부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런데 당국은 여전히 “내재가치가 없고 투기성이 강한 가상자산”이라며 가상통화의 실체를 외면하고 있다. 더구나 당국은 가상통화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다면서도 내년부터 투자 수익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하는 등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정부 당국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가상통화를 화폐 혹은 투자자산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실체가 불분명하고 투기성이 강해 적정가치를 매기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과 스위스, 싱가포르 등은 가상통화를 제도권 안으로 수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미 실체가 된 가상통화를 인정하고 투기판이 되지 않도록 규제해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가상통화 제도화에 열린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순리다. 극단으로 치닫는 청년들의 가상통화 투자 행태를 이대로 방치하다가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이 사회·정치 문제로 번질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당국의 승인을 받은 가상통화만 거래소에 상장하거나, 거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제정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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