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이재용의 '승어부'와 상속세

박정일 2021. 4. 26.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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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박정일 산업부 재계팀장

최소 10조원이 넘는 '세기의 상속세' 납부 발표가 임박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나는 과연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산이 어떻게 분배됐을지, 또 하나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어떻게 납부할 지이다. 수많은 추측이 나왔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삼성물산에 맡겨 상속세 부담을 줄인다든지, 이건희 재단을 만들어 사회환원을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모든 진실은 이건희 회장의 유지에 담겨 있겠지만, 지금은 알 방법이 없다.

원칙적으로 보면 기업 총수도 민간인이기 때문에 상속세를 공개할 이유도, 이를 보도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워낙 재계 1위인 삼성이라는 상징성과 전례 없는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궁금한 것은 어쩔수 없다. 삼성 내외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추정해보자면, 이 부회장 등 유족들은 논란의 여지를 만들지 않고 깔끔한 세금 납부 방식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인이 열심히 돈을 벌어 많은 세금을 내는 사업보국(事業報國·사업으로 국가와 국민에 이바지함)이 선대 이병철 회장의 사업철학 아니었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이어 더 발전시키는 '승어부(勝於父·아버지보다 나음)' 하겠다고 했다. 그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본다."

이 부회장의 지금까지 발언과 행보를 보면 어 느정도 근거가 있어 보인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9년 11월 19일 이병철 선대 회장 추도식을 마친 뒤 사장단과 오찬을 함께 하며 "선대회장님의 사업보국 이념을 기려 우리 사회와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합시다"고 말했다. 작년 5월에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젠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아마도 최선을 다해 상속세를 낼 것으로 보인다. 기부나 사회환원 등 여러 추측성 보도가 끊이지 않았지만, 유족들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속세와 함께 이 부회장에 대해 여론이 주목하는 것은 코로나19 백신 확보 등을 위한 특별사면 실현 가능성이다. 재계와 정치권 뿐 아니라 종교계, 학계 등 각계 원로들까지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하고 있다.

물론 이 부회장 역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를 일부 인정하고 재상고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고 있다. 급성충수염으로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특혜를 받을 수 없다며 수술을 미루다 대장을 일부 절제하는 등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삼성은 물론 우리나라도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삼성전자를 직접 지목해 자국 내 반도체 생산공장 투자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투자규모 등을 명확하게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몇년 앞을 선제 예측해 수조원 또는 수십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반도체 사업은 투자 적기를 놓치거나, 또는 수요 예측을 잘 못해 과잉투자를 할 경우 손실규모가 엄청나다. 과거 반도체 치킨게임을 경험했던 전문경영인들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이럴 때 총수의 과감한 결단이 중요하다. 최대주주라는 자격이 있는 만큼 책임경영의 권한이 주어진다. 특히 반도체는 4차 산업혁명과 함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산업의 쌀을 넘어 마치 '공기'처럼 필수 불가결한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이 반도체와 백신, 보호무역 등을 무기로 편가르기를 하고 있고, 우리는 두 나라에 수출의 40%를 의존하고 있다. 사업 뿐 아니라 정치·외교적인 감각과 역량도 필요하다. 여기에서 이 부회장이 가진 글로벌 인맥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전문경영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총수는 얻을 수 있고, 이는 투자의 성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제한 조치 당시에도 이 부회장이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각계 원로들의 의견을 청취했고, 결과적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출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막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 삼성의 총수는 현재 영어(囹圄)의 몸인데다 또 다른 재판에도 발이 묶여 있다. '옥중경영'이라는 의혹을 받을 수 있어 함부로 경영에 대한 판단을 삼성 전문경영인에게 전달할 수도 없다.

세계 각국은 지금 자국 내 반도체 밸류체인 확보에 '안보'를 내세울 만큼 사활을 걸고 있고, 심지어 코로나19 백신과의 '스와핑(맞교환)'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밸류체인 강화를 위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 부회장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국가 경제와 안보를 위해 이 부회장의 사면을 고려해야 한다. comja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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