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그런 말 싫어요. 그냥 다같이 '최중' 하면 안되나요?"..윤여정의 '말말말'

심윤지 기자 2021. 4. 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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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프레스룸에서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근데 미국 사람도 똑같더라고. 계속 브래드피트 본거 어떠냐고만 물어봐….”

배우 윤여정(74)이 화이트와인을 마시며 말했다. 25일(현지시간)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후 미국 로스엔젤레스 총영사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던 자리에서도 윤여정은 특유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솔직하면서도 따뜻하고, 소탈하면서도 세련된 그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온 윤여정 어록을 ‘말말말’ 형식으로 정리해봤다.

“나는 ‘최고’ ‘1등’ 그런 말 싫어요. 우리 그냥 다같이 ‘최중’만 하고 살면 안돼요?”

윤여정의 아카데미 연기상 수상은 한국인으로는 최초, 동양인으로선 두번째 기록이다. 지금까지 영화 <미나리>로 들어올린 트로피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포함해 39개. 그는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것같냐’는 기자의 질문에도 “최고의 순간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각자의 색을 가진 배우들 간의 경쟁이 싫다는 그는 오히려 ‘최고’가 아닌 ‘최중’의 가치를 역설한다. “우리 너무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맙시다. 그냥 다같이 최중만 되고 살면 안돼요? 우리 다 동등하게 살면 안되나? 그럼 나 사회주의자가 되나. 하하하”

“글랜 클로스가 진심으로 받길 바랐어요. 참 대단하더라고요.”

이번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가장 큰 경쟁자는 글렌 클로스였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로 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는 아카데미 후보에만 8번이나 오른 대배우. 윤여정은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수상한다고 생각도 안했다. 진심으로 클로스가 받길 바랬다”며 이렇게 말했다.

“2000년도인가 영국에서 그가 출연한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연기한 블랑쉐는 어려야 하는데, 그가 나와의 동갑이거든요. 젊은 당시 나이에 할 수 없는 걸 하는 걸 보고 진심으로 감동했어요.” 배우의 가치는 트로피 하나만으로 쌓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윤여정이기에 할수 있는 말이다.

“사치스럽게 살기로 결정했어요. 내가 내 인생 내맘대로 살수 있으면 그게 사치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고 벌써 55년째 ‘현역 배우’의 삶을 살고 있는 배우 윤여정. 그는 자신만의 연기철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열등의식’을 뽑는다. “연극배우 출신도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로 연기를 시작했다”는 그는 “나의 약점을 알기에 열심히 대사 외워서 남에게 피해를 안주려고 했다”고 말한다.

“편안하게 연기 좋아해서 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절실해서 먹고 살려고 했어요. 대본은 저에게는 성경같았어요. 상탔다고 멋있게 이야기한거같네. 아무튼 많이 노력했어요. 누가 브로드웨이를 가는 길을 묻자 ‘연습’이라고 대답했다는 명언도 있잖아요. 연습을 무시할 수는 없죠.”

60대를 지나면서는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달라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 작품을 하면 내 성과가 좋겠다는걸 계산했다”며 “환갑이 넘어서부터는 작품을 가지고 온 프로듀서가 내가 믿는 사람이라면” 출연을 결정한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연기해야 했던 지난 날을 견뎌왔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키는 일만 할 수 있게 된 지금을 만끽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02년 월드컵할때 축구선수들은 심정을 알겠더라고. 김연아도 얼마나 힘들었겠어.”

아카데미 시상식이 다가올수록 ‘유력후보’ 윤여정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그는 당시 받은 스트레스를 털어놓으며 “축구선수의 심정을 알겠더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끼리 재미있게 영화 찍다보니까 이렇게 된건데 (주변에서) 너무 응원을 하니까….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는지 눈에 실핏줄이 다 터졌어요. 그 사람들 입장에선 성원인데 나는 ‘못받으면 어떡해’가 된거에요. 2002년 월드컵 때 축구 선수들이나 김연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더라고.” .

“43세 먹은 감독한테 존경한다고 했어요. 제가 이제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됐거든요.”

윤여정은 수상소감에서 자신의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화녀>의 김기영 감독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김 감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가 그분께 감사하기 시작한건 50~60대가 되어서,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에요. 예전에는 이상한 사람인줄만 알았거든. 사람들은 다 천재라고 해도 나에겐 너무 힘든 감독이라 싫었는데 지금까지도 후회돼요.”

올해로 74세. “이제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됐다”는 그는 영화 <미나리>를 연출한 정이삭 감독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데 현장에서 누구도 모욕주지 않고 모두를 존중하며 컨트롤하더라고요. 43세 먹은 감독한테 제가 존경한다고까지 했어요. 그를 만날 수 있는 것도 내가 배우를 오래 해서 그런 것이겠죠. 제가 김 감독에게 못한 것을 지금 정 감독이 다 받는 것 같아요.”

“살던대로 살아야지. 제가 오스카 상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거 아니잖아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아카데미상 이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면서 “(대본을 못외워서) 남에게 민폐가 되지 않을때까지는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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