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수상 직후 윤여정, LA서 언론과 일문일답

김예진 2021. 4. 2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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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오스카상 시상식이 끝난 뒤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서 특파원단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스카 수상의 벅찬 마음이 가시지 않았을 25일 오후 9시(현지시간), 윤여정은 한국 특파원들과 마주 앉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주재 총영사관에서 윤여정은 딸 역할을 맡았던 배우 한예리를 옆자리에 앉히고, 화이트와인으로 목을 축여가며 약 한 시간 답변했다. 솔직, 당당, 배려의 언어로 인생 철학, 연기철학을 설명했다. 오스카상 수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으며 윤여정의 삶은 살아온 그대로, 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수상 소감은.

“그녀(또 다른 후보 ‘힐빌리의 노래’ 글렌 클로즈)가 저하고 딱 동갑이더라.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받기를 바랬다. 우리 영화 미나리 같이 한 친구들은 선생님이 받는다고 하는데 저는 별로 안 믿었다. 요행수도 안 믿고, 인생을 많이 살아 배반을 많이 당해봐서 믿지도 않았는데, 제 이름이 불렸다. 영어 잘 못 하지만, 좀 더 잘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막 엉망진창으로 했어. 그게 좀 창피하다. 팬데믹으로 노미니(후보)가 한 명만 데리고 올 수 있는 상황이다. 두 아들 중 하나를 어떻게 할 수 없었고, 아들은 자기보다 이인아 프로듀서가 갈 자격이 있다고 했다. 인아는 예리가 가는 게 영화를 위해 아름답다고 했다. 우리 영화는 진심으로 만든 영화다. 이 자리 뒤에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 오랜 연기 생활에서 오늘 남다를 것 같다. 세월이 흐르며 달라진 연기철학이 있는가. 재치있는 언변으로도 사랑을 받고 있는데 비결은.

“열등의식에서 시작됐다. 아르바이트하다가 했기 때문에 제 약점을 아니까 남한테 피해를 안 주자는 것을 시작으로 열심히 외우는 거다. 나중에는 절실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냥 좋아서 해도 되지만, 저는 절실해서 했다.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누가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을 물었대요. ‘하우 투 겟 투 더 브로드웨이’라고. 답은 ‘프랙티스’였대요. 연습은 무시할 수가 없다. 입담은… 오래 살았잖아요. 좋은 친구들하고 수다를 잘 떤다. 수다에서 입담이 나왔나 보죠. 뭐.” 

- 지금이 배우 인생에 최고의 순간인가.

“최고 그런 말이 참 싫다. 너무 1등, 최고 이런 것… 다 같이 최중되면 안 되나? 최고의 순간인지 모르겠고,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나.”

- 작품 선택 동기는.

“작품 선택 기준은 나이 60 넘어서 바뀌었다. 그 전엔 나름 계산했다. 이걸 하면 성과가 좋겠다고. 60이 넘어서부턴 저 혼자 약속한 게 있다. 사람을 보고, 사람이 좋으면 하기로. 그걸 가져온 프로듀서가 내가 믿는 애면 하리라 그랬다. 사치스럽게 살기로 했다. 내 인생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것 아니냐. 대본 가져온 애가 내가 믿는 애였고, 내가 정말로…설명할 순 없지만 그런 게 있었다. 대본을 읽어 온 세월이 오래돼서 딱 보면 알죠. 이게 진짜 이야긴가 아닌가. (미나리는) 순수하고 진지했다. 기교가 아니라 진심으로 이야기를 썼다. 늙은 나를 건드렸다. 그래도 제가 또 잘 안 넘어가는데, 감독을 만났더니 요새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감독들도 다 잘난 사람들이고, 제가 잘난 척 하는 사람 싫어하는데, 이런 사람이 있나 싶어서 했다. 독립영화라 비행기도 이코노미석을 타고 오라는데, 제가 칠십 넘은 나이에 그러지 못해서 제 돈으로 왔다.”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오스카상 시상식이 끝난 뒤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에서 특파원단과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나리가 해외에서 사랑 받은 이유는.

“대본을 잘 쓴 거다. 제가 잘 한 게 아니고. 부모가 희생하고 그런 건 국제적으로 유니버설한 이야기다. 그게 세상을 움직였겠죠. 할머니는 손자를 무조건 사랑하잖아요. 그 소재를 굉장히 진심으로 썼다. 평론가에게 물어봐 달라. 배우는 자기 역할을 받으면 그걸 연구하지 영화가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는 모른다. ”

-앞으로 계획은.

“없다. 그냥 살던 대로. 오스카상 탔다고 해서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옛날부터 결심한 게 대사 외우는 게 힘든데, 남한테 민폐 끼치는 건 싫으니,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하자 그런 생각은 했다.”

- 감독이란 윤여정 연기 인생에 무슨 의미냐.

“영화는 감독이다. 나이 60 넘어 알았다. 영화는 종합예술, 감독은 모두를 아울러야 한다. 대단한 힘이다. 김기영 감독을 만난 건 21살인가. 그분에 대해서 정말 죄송한 건, 제가 그분을 감사하게 생각한 게 (나이) 50, 60되서, 그분 돌아가시고 나서다. 사람들은 천재라고 하는데 나한텐 너무 힘든 감독이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늘 이야기했다. 김기영 감독은 어렸을 때 만난 거고, 정이삭 감독은 늙어서 만난 것. 우리 아들보다도 어린 앤데 어떻게 이렇게 차분한가. 현장에선 (감독들이) 미치거든. 수십명 컨트롤하면 감독들이 돈다. 정이삭은 그걸 너무 차분하게 컨트롤하는데, 누굴 모욕주지도 않고, 업신여기지도 않고 다 존중하면서 한다. 친구들이 내가 흉 안 보는 감독은 정이삭이 처음이래. 그가 코리안 아메리칸이지 않나. 한국사람의 종자로 미국에서 교육받아 굉장히 세련된 한국인이 나온 거구나 싶다. 우리는 우리끼리 살며 또 문제가 있잖나. 정이삭의 그 세련됨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정이삭에게서 희망을 봤다. 43살 먹은 앤데 내가 존경한다고 했다. 김기영 감독을 만났을 땐 내가 감사를 몰랐는데, 김기영 감독님한테 내가 못한 걸 정이삭이 다 받는 것 같다. 내가 감사를 아는 나이가 됐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왼쪽·74)이 할리우드 스타 배우 브래드 피트(오른쪽·58)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연합뉴스
- 브래드피트와 무대 뒤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나.

“미국 사람들도 똑같아. 계속 나보고 브래드피트를 본 게 어떠냐고 그 질문만 하더라. 그 사람은 영화에서 계속 봤으니까 뭐. 그가 사실은 우리 영화 제작자다. 다음번에 영화 만들 때 돈 좀 더 써달라고 했더니, 아주 잘 빠져나가더라. 쪼끔 더 쓰겠다고 했다. 크게 쓰겠다곤 안 하더라고. 유명한 배우니까 한국에 한 번 오라고 했다. 여러 사람이 좋아한다고. 팬이 많다고. 꼭 온다고 하더라고. 미국사람들은 단어가 화려하잖나. 내겐 내 퍼포먼스를 존경하고 너무 어떻다고 해서, 난 그런 말은 늙어서 별로 남의 말에 잘 안 넘어 간다.”

- 엔딩이 아쉽다는 이야기도 있다.

“처음 대본은 달랐다. 처음엔 한국사람 정서에 맞게 한참 뒤에 할머니가 돌아가신다. 그 엔딩이 우리는 좋았다. 그런데 바꾸더라. 감독이 참 현명하더라고. (원래 대본대로 훗날을 보여주면) 지금 아이들이 십 대가 되고 또 오디션을 보고 해야 하는데, 그냥 바꾸기로 했다고 설득하더라. 스티븐 연과 이야기했나 봐. 선댄스영화제에서 (바뀐) 엔딩을 보고 너무 좋았다. 영화에서도 ‘한국사람에겐 머리가 있지, 머리를 쓰는 거야’ 라고 하잖아. 예일대 나온 애라 나보다 머리가 좋구나 했다. 한국사람들은 너무 자극적인데 그렇게 심심한 영화, 엠에스지도 안 넣은 영화를 누가 좋아할까 그랬는데, 그 엔딩이 좋았다. 모든 것을 걔네들이 디스크리미네이션하지 않는다. 대체로 감독들이 비틀텐데, 그걸 안 비틀더라. 내 동생도 엔딩이 그게 뭐냐고 하는데, 내가 영화를 좀 세련되게 보라고 했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최우수 여우 조연상을 받고 기자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해외 영화계에서 러브콜이 들어오나.

“영어를 못해서 해외에서 들어올 일은 없다.”

-국민이 많이 성원했다. 

“상을 타서 보답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운동선수들 심정을 알겠더라. 너무 응원해주니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힘들어서. 그들은 성원인데 나는 상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되나 싶더라고. 난 받을 생각도 없었고 후보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2002년 월드컵 할 때 그 사람들 발 하나로 온 국민이 난리인데 그들이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김연아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운동선수 된 기분. 세상에 처음 받는 스트레스였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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