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는 첫사랑, 지휘로는 할 수 없던 것들을 표현"

박지현 2021. 4. 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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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로 돌아온 정명훈
7년만에 두번째 독주 앨범 발매
하이든·베토벤·브람스 세 작곡가
인생 말년에 완성한 곡들로 구성
"살아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이제는 명성·성공에는 관심 없어"
정명훈 / 크레디아 제공

"상상이 돼요? 스물 한 살 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수상했으니 벌써 47년 전이고 지휘봉을 잡으면서 피아니스트로 활동 안한지가 30년이 넘어요. 하지만 첫사랑은 피아노였어요. 깊이 사랑했기에 항상 피아노 옆에 있길 원했어요. 이제는 좋아서 치는 것이죠."

마에스트로 정명훈(68)이 잠시 지휘봉을 내려놓고 '피아니스트'로 돌아왔다. 지난 22일 정명훈은 도이치 그라모폰(DG) 레이블을 통해 '하이든·베토벤·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 디지털 앨범을 선발매했다. 이번 앨범의 프로듀싱은 재즈기타리스트이자 음반 프로듀서로 활동중인 차남 정선씨가 맡았다.

정명훈의 '하이든·베토벤·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은 위대한 세 작곡가들이 인생 말년에 완성한 피아노 곡을 담은 앨범으로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60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그리고 브람스 4개의 소품(작품번호 119) 등 총 3곡이 담겼다. 세 작곡가 모두 50~60대에 작곡한 작품들로 지금 정명훈의 나이와도 비슷하다.

이날 신보 발매와 동시에 이어지는 피아노 리사이틀을 알리기 위해 기자들 앞에 선 정명훈은 "사실 저는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너무 잘하는 피아니스트들이 많다. 다만 7년 전에 둘째아들이 손주들을 위해서 피아노 앨범 녹음을 했으면 좋겠다 해서 아이들이 좋아할 곡들로 앨범을 하나 냈고, 이번엔 최근 1년 동안 코로나19로 유럽에서 지휘 스케줄의 90%가 사라지면서 집에서 피아노만 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또 둘째아들이 녹음을 하자고 하더라"며 "공연기획사 크레디아에서 이왕이면 리사이틀도 하자 해서 거기에 설득당해 이렇게 무대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솔직히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게 잘하는 피아니스트들에겐 미안한 소리죠"라며 "결국 처음 음악을 사랑하게 하고 깊이 사랑하게 만든 악기를 통해 지휘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제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라 보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발매한 앨범의 첫번째 작품인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60번은 이전 작품에 비해 폭넓은 테크닉을 요구하고 다이내믹한 대조와 드라마를 담고 있어 하이든의 소나타 중 가장 까다롭다고 평가되는 곡이다. 하이든은 이 곡을 피아니스트 테레제 얀센 바르톨로치에게 헌정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은 베토벤의 기념비적인 피아노 소나타 '함머클라이버' 이후 출판된 곡이다. 이후 베토벤이 짝사랑한 '불멸의 연인'의 주인공으로 추측되는 안토니 브렌타노의 딸, 막시밀리아네에게 헌정됐다.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인 브람스의 4개의 소품은 독일의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을 위한 곡이었다. 네 곡으로 구성된 해당 작품에서 가장 짧은 제3곡은 연주회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되며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이다. 가볍고 우아한 매력을 뒷받침하는 박절 구조에서 브람스의 정교한 폴리 리듬 사용이 돋보인다.

정명훈은 "이번 앨범은 작곡가들이 말년 완성한 피아노 작품들을 모았다"며 "수많은 레퍼토리 중 시작은 하이든이 마지막으로 작곡한 콘체르토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다음엔 '가장 큰 거인' 베토벤을 뺄 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브람스의 경우 지휘자로 활동하며 대작을 많이 다뤘는데 이번 앨범에서 조용하고 아름다우며 친밀함을 주는 곡들을 담고 싶어서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앨범은 이탈리아 베니스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녹음했다. 정명훈은 "제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가 베니스고 또 그 극장이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늘 생각했는데 그곳의 사장과 매우 친해서 거기서 녹음을 하게 됐다"며 "이제 음악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어디가 전문적이냐를 따지기보다 개인적인 친분이 더 중요해졌다. 알고 지낸 친한 사람들과 음악을 계속하고 싶지 명성과 성공을 위해 하는 것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명훈은 최근 공석인 KBS교향악단 차기 음악감독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이 나이가 되니 책임을 지는 것에 관심이 없다"며 "어떠한 자리에 책임을 맡는다는 것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오케스트라를 발전시켜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고 잘라 말했다.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를 수상하며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클래식 아티스트로서 벌써 반세기 가까이 활동해온 정명훈은 "지나간 삶을 돌아보자니 굉장히 긴 대답을 해야할 것 같다"며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인 것 같다. 저는 음악가로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사람은 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하고 이번에는 피아노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 같다. 부족하지만 연주를 앞두고 앞으로 실수할 것들을 미리 용서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둘째아들이 계속 녹음을 하자고 해서 앞으로도 한번 정도는 더 할 수도 있다"며 "인생을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내 아내를 위해 슈만 판타지를 연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마 마지막 앨범의 이름은 '열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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