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플라스틱, 우리 동네 벤치 될 수 있을까?

서혜빈 2021. 4. 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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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순환 경제의 실현과 전망' 정책토론회

"쓰레기 수거부터 재활용 상품 개발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협동조합형 모델 활용을"

자치구별로 '재사용 업사이클 센터' 두거나
카페·음식점 '다회용기 배달 모델' 제안도

"시민 실천·기업 혁신·지자체 인프라 등
거버넌스 통한 주체별 역할 분담이 핵심"
지난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자원순환 경제의 실현과 전망’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이 ‘한국 자원순환 시스템의 현황과 전망’을 발표하고 있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에서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시티즈’(CITIES foundation)는 지역에서 나온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가공해 공원 벤치나 놀이터 기구 등 공공시설물을 만든다. 플라스틱 수거에 참여하는 주민에겐 카페, 빵집 등 지역 가맹점에서 소비할 수 있는 화폐를 제공한다. 커피 찌꺼기로 버섯을 재배하거나 주민들 간 플라스틱 소비량을 공유하는 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암스테르담시가 지역 주민, 기업, 대학 등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실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한 덕이다. 지자체가 나서 일종의 ‘놀이터’를 제공하자, 지역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상호작용하고 자원순환을 위한 혁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자원순환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한 가지 방법은 폐기물 재활용·재사용이다. 상품의 생산-소비-폐기로 이어지는 선형 구조에서 벗어나, 자원의 가치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자원이 소비되고 폐기물이 배출되는 지역 현장에서 해법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자원순환 경제의 실현과 전망 정책토론회’는 폐기물 재활용·재사용 모델을 만들기 위한 지역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짚어보는 자리였다. 이번 토론회는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와 사단법인 선, 사회적협동조합 자원과순환이 함께 마련했고, 더불어민주당 사회적경제위원회와 환경부, 한솔제지, 롯데칠성음료, 맥도날드가 후원했다.

발제를 맡은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자원순환 경제를 위해선 개인의 실천, 기업의 혁신, 지자체의 인프라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회용기 배달 모델’을 제안해 일회용품 없는 도시를 만들자고 했다. “카페와 음식점은 배달이나 포장 이용 소비자에게 다회용기에 음식을 담아 제공하고, 소비자는 다회용기를 반납해 보증금을 환불받는다. 수거된 다회용기는 대여·세척 업체가 회수해 세척한 뒤 다시 가게에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다회용기 제작이나 수거 인력을 지원하고, 공공기관 입점 매장을 포함한 지역 가게들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이 제안한 다회용기 배달·포장 모델.

홍 소장이 제안한 모델은 실제로 미국 뉴욕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다. 글로벌 친환경 기업 ‘테라사이클’(TerraCycle)은 2019년 온라인 쇼핑 플랫폼 ‘루프’(Loop)를 공개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트로피카나 오렌지 주스 등 소비자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 제품을 리필이 가능한 다회용기에 포장해 배송하고, 빈 용기를 무료로 회수 및 세척해 다시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용기를 반납한 소비자는 보증금을 되돌려 받아 플랫폼 내 제품을 구매하거나 인출할 수 있다.

국내에는 사회적 경제 기업이 주도하는 사례도 있다. 또 다른 발제를 맡은 이만재 사회적 협동조합 ‘자원과순환’ 이사장은 ‘지역의 자원순환 현실과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지역 조합원들이 쓰레기 수거부터 재활용 상품 개발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사례를 발표했다. ‘자원과순환’과 협약을 맺은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카페, 음식점에서 나오는 일회용 쓰레기를 지역의 1차 수거 조합원이 수거해 주민센터가 지정한 장소에 보관한다. 이들은 지자체가 선발한 지역 노령 근로자다. 수거 운반 차량과 재활용 처리 및 제품 생산 업체도 모두 ‘자원과순환’의 조합원이다. 종이컵이나 우유팩은 휴지가 되고, 플라스틱 컵과 뚜껑은 패딩 안감이나 차량용 카펫이 된다. 재활용 가공 제품 판매 수익은 1차 수거 근로자와 수거 운반 차량, 조합 직원들에게도 돌아간다. 이 이사장은 “쓰레기를 발생시키고 재활용하는 주체들이 스스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협동조합 모델을 활용한다면, 지역 내 자원순환 경제 구축은 물론 일자리 창출로도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수퍼빈의 쓰레기 회수 로봇 ‘네프론’에 플라스틱병을 넣고 있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폐기물 재활용을 위한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성용주 충남대 교수(환경소재공학)는 토론에서 “종이컵 재활용이 안 된다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종이컵에 덮인 필름을 분리하는 공정 기술, 필름 없는 친환경 종이컵 생산 등의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자원순환 경제를 완성하는 최종 단계이자 고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단계는 가공 단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퍼빈 사례를 소개하며 “인공지능 로봇이 24시간 생활 쓰레기를 학습하고, 쓰레기 회수 및 분류부터 운송, 가공 과정까지 참여해 순도 높은 재료로 고품질 가공 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소장과 정규호 한살림연합 대외협력실장은 이날 한목소리로 지역 자원순환 센터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홍 소장은 “자치구 단위별로 ‘재사용 업사이클 센터’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고·업사이클 제품을 판매하고, 수리·수선 서비스를 제공하며, 친환경 소비 체험 교육을 제공하는 시설이 있다면 자원순환의 지역 거점 공간이 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정 실장도 토론에서 “사회적 경제 기업이 운영하는 자원순환 센터를 지역마다 설치해 재활용품 회수부터 보관, 세척, 재활용 전 과정을 관리하고, 이 과정에서 주민 일자리와 연계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 48개 지자체가 모인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는 지난 23일 ‘지방정부 자원순환 선언문’을 발표했다.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자원순환 경제 구축을 위한 지역 단위 실천과 거버넌스 구성에 공감하는 전국 48개 지자체는 이날 지방정부 자원순환 선언식에서 △폐기물 배출·선별·수거 시스템 정비 △지역 내 자원순환 실천 확산을 위한 조례 제정 등 제도 마련 △일회용품 사용 최소화 및 자원순환 위한 새로운 기술 적극 도입 △폐기물 재활용·재사용에 앞장서는 사회적 경제 기업 성장 지원 △지자체 자원순환 우수 정책사례 발굴 및 전국 확산 내용이 담긴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혜빈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원 hyeb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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