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서강이 아프면 한강도 아프다 / 김용희

한겨레 2021. 4. 2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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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 논란

김용희ㅣ동서강보존본부 감사

지난 4월9일 낮 12시, 강원도 영월세무서 맞은편 주차장에는 쌍용양회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 반대를 위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날은 쌍용양회의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을 위한 사전환경영향평가 주민공청회가 영월읍 내 문화예술회관에서 있는 날이기도 했다.

대부분 쌍용양회 산업폐기물 공사를 반대하기 위해 영월군 한반도면이나 인근 제천, 단양, 충주 등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었으나 그중 절반 이상은 쌍용양회가 소재한 한반도면 지역 주민들로 보였다. 이곳에서 모여 공청회가 개최되는 영월문화예술회관까지 도보 행진이 예정되어 있었다. 쉰 아래로 보이는 젊은 분들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고 대부분 60대 이상은 되어 보였다. 흰머리가 듬성한 아들의 손을 잡고 나오신 어머니는 연세가 여든다섯이라고 하셨다. 한반도 지형 가파른 절벽에 기대선 소나무처럼 조금은 굽거나 휘어졌고 잘 마른 강원도 찰옥수수 수염처럼 희끗하기는 했지만 평생 동안 자신을 지켜주었던 서강을 이제는 자신들이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선량함과 당당함이 엿보였다.

집회의 주축이 된 어르신들은 쌍용양회 산업폐기물매립장 반대 영월·제천·단양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나눠준 ‘산업폐기물매립장 아웃(OUT)’, ‘쌍용양회 아웃’이라는 반대 홍보물을 들고 노래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드셨다. 반대 투쟁을 위한 길고 긴 연대사에 어르신들을 위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이 자리를 지켜야만 폐기물매립장이 건설되지 않을 것이라는 바위 같은 믿음 때문인지 “쌍용양회는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 계획을 철회하고, 원주환경청은 쌍용양회 산업폐기물매립장 환경영향평가서를 부동의하라!”는 구호를 놓칠세라 따라 외치며 집회가 이어지는 3시간 동안 잠시도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

서강은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한반도 습지가 있고 60㎞의 직선거리를 220㎞나 돌아 흐르는 강으로도 유명하다. 능선을 하나 넘으면 방금 전에 사라졌던 서강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다시 사라지는가 싶었는데 또 만나게 되는 그리움의 강이기도 하다. 220㎞의 물길 끝에는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가 있고 그곳에서 2㎞ 정도 더 내려가면 동강과 서강이 합수하여 남한강 수계가 시작된다. 60년 전만 하더라도 정선의 천년 된 소나무로 엮은 뗏목의 물길이기도 하였다.

쌍용양회 산업폐기물매립장 예정지는 그런 서강과는 직선거리 2.5㎞에 불과하다. 지난 1월과 3월에는 쌍용천에서 흘러나온 짙은 초록 물이 서강으로 유입되었는데 쌍용양회가 매립장 예정지 지하에 동공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형광염료인 우라닌을 흘려보낸 것임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쌍용양회는 예정대로 이 사업을 강행하기 위해 환경영향평가 주민공청회를 개최한 것이다.

<강원도민일보> 4월9일치 신문에서는 “영월 친환경매립장 건립 땐 수익금 40% 환원”한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수익의 100%를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있다. 쌍용양회가 있는 한반도면은 영월의 심장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한강, 한강에 기대 사는 단양, 충주, 경기도, 서울 시민들의 생명줄이기도 하다. 그건 그 무엇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제천에서 영월까지 이날 행사를 위해 참관수업을 나온 간디학교 4학년 학생인 허찬솔군은 “적어도 저희들에게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물, 마음 놓고 씻을 수 있는 물은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미래를 위해 당연히 배려해줘야 할 것들 아닌가요? 그것이 먼저 이 환경을 사용하셨던 당연한 예의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제 우리는 그 당연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쌍용양회의 산업폐기물매립장 건설 문제는 서강에 기대 80년 넘게 사셨던 어르신들만의 문제도, 영월군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근 제천과 단양, 충주의 문제이자 한강에 기대 사는 경기도와 서울시의 문제, 무엇보다 미래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행복한 생명>, 류재숙) 강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강이 아프면 같이 아플 수밖에 없다. 강처럼 길고 넓은 연대의 힘만이 그것을 멈추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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