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냐 동물이 먼저냐'는 질문은 잘못됐다

김지숙 2021. 4. 26. 16:5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가습기살균제로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피해 사례가 책으로 발간됐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지난해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반려동물 피해사례와 현황, 지원욕구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
사회적참사특조위, 반려동물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집 발간
가습기살균제 반려동물 피해를 다룬 영상 ‘끝에서 시작하다’(감독 임진평)의 한 장면. 영상 갈무리

2010년 12마리 고양이 가족에게 비극이 시작됐다. 시작은 고양이 ‘모모’였다.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복막염 같다고 했다. 복막염 치료를 위해 가습기를 늘리고, 살균제를 사용했다. 집사는 모모를 살리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뒷바라지에 최선을 다했지만 그해 9월 모모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모모가 사망한지 10일도 되지 않아, 연이어 다른 고양이들도 같은 증세로 앓기 시작했다. 그렇게 2개월 만에 고양이 7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강아지 ‘뽀린이’는 늘 가습기 근처에 있길 좋아했다. 다른 강아지들인 ‘뽀’와 ‘달’이도 마찬가지였다. 밝고 씩씩하던 뽀린이가 어느 날부터는 산책을 나가서 잘 걷지를 못하고, 품에 안기려고만 했다. 밤에도 헉헉거리는 일이 늘어났다. 집안이 더워서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산책길에서 사달이 났다. 갑자기 걷지도 못하고 몸이 딱딱하게 굳은 뽀린이의 혓바닥은 보라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2010년 뽀린이가 세상을 떠나고, 같은 해 달이도 세상을 떠났다.

가습기살균제로 세상을 떠난 동물들의 피해 사례가 책으로 발간됐다. 사례집 ‘끝에서 시작하다’는 가습기살균제로 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들이 겪은 피해와 사회적 고통, 재발방지 대책 등을 짚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지난해 가습기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반려동물 피해사례와 현황 등을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사례집은 이 연구에 참가한 반려인 8가구 9명의 심층 인터뷰를 담고 있다. 연구는 한국성서대학교 김성호 교수(사회복지학과)와 연구진을 중심으로 시행됐다.

특조위는 머리말에서 “사람이 먼저인가, 동물이 먼저인가?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그 대답은 잘못되었다. 지구 안에서 사람과 동물과 환경은 하나로 묶여있고, 동시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며 “이러한 개념을 원 헬스(One Health)라고 부른다”고 말문을 열었다.

실제로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반려동물에서였다. 2007년 10월,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는 반려동물에게 치사율이 매우 높은 원인 미상의 폐질환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과 그 원인을 밝혀달라는 요청이 접수된다. 2008년 3월 대한소아과학회가 원인미상의 폐질환을 인지하고 질병관리본부에 조사를 요청하기 5개월 전 일이다. 그러나 당시엔 동물이나 사람 모두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4년의 시간이 흐른다.

2011년 1월 또 다시 서울 모 대학 동물병원에 비슷한 폐질환을 일으킨 반려동물이 내원하며, 수의사가 가습기살균제의 성분과 독성시험을 추진하려 했으나 다시 좌절된다. 그리고 3개월 뒤, 전국에서 7명의 임산부가 폐질환으로 입원하고 나서야 정부는 가습기살균제의 독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사례집은 반려동물을 잃은 8가구의 이야기를 만남부터 차근히 되짚는다. 탯줄을 직접 자른 강아지부터 고양이를 키우며 채식을 시작하게 된 사연까지 반려동물을 애지중지 키웠던 이들의 사연은 갑작스런 동물의 죽음이 왜 그토록 상처로 남게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반려인들의 펫로스 증후군을 연구한 유현정 연구원은 “조사에서 나타난 피해동물 보호자들의 특징은 ‘가해의식과 죄책감’을 강하게 갖고 있던 것이었다”고 적었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을 알았으냐 몰랐느냐와 상관없이 보호자들이 ‘내 손으로 사랑하는 아이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특조위는 사례집에서 “지금까지 가습기살균제 피해동물 가족들은 죄책감 속에 방치되어 왔다. 2016년 검찰수사가 5년만에 본격화됐고, 환경부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보상 확대를 위해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열었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반려동물의 피해는 철저히 소외되었고, 피해반려동물의 가족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별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가습기살균제 반려동물 피해를 다룬 영상 ‘끝에서 시작하다’(감독 임진평)의 한 장면. 영상 갈무리

연구책임자인 김성호 한국성서대 교수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앞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들(사람과 동물, 환경)을 분리하여 보는 바람에 많은 것을 놓쳤다”면서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반려동물이 인간에게 생활화학 제품의 위험을 비자발적으로 경고한 사례다. 그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사례집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누리집에서 27일부터 다운받아 볼 수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