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단점은 실화라는 것"..드라마·책·영화로 만나는 체르노빌 그날의 기록

김민제 2021. 4. 26.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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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오늘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일 밤 우크라이나 슬라브티치의 체르노빌 희생자 기념비에서 발전소 직원이 35년전 핵발전소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을 켜고 있다. 슬라브티치는 체르노빌에서 50km 떨어져 있다. 슬라브티치/AFP 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6년 4월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건은 원전의 위험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회자된다. 체르노빌 인근 지역은 어두운 역사 현장을 돌아보며 그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는 ‘다크 투어리즘’ 관광 코스이기도 하다. 과거의 한 장면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데다 원전 안전 관리 문제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원전을 보유한 모든 국가가 영원히 끌어안고 갈 문제이기 때문이다. 35주기를 맞아, 과거의 비극인 동시에 현재 진행형 사건인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드라마와 책, 영화로 소개한다.

<체르노빌> ‘유일한 단점은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것이다’

미국 에이치비오(HBO)에서 지난 2019년 5월부터 6월까지 5부작으로 방영한 드라마 <체르노빌>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시작 시점부터 수습 과정,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오티티(OTT) 서비스 업체 ‘왓챠’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왓챠 리뷰 중 ‘이 드라마의 유일한 단점은 실화라는 것이다’라는 평이 널리 알려져 있을 만큼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실상을 완성도 높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참사의 주요 장면들은 낯이 익다. 업력이 4개월에 불과한 25살 연구원을 비롯해 숙련되지 않은 하급자에게 비인가 실험을 시행하라는 무리한 지시가 내려졌고, 소련 당국은 사건의 진상을 축소하려다 늦은 소개령을 내려 피해를 키웠다. 당국이 폭발 이전부터 원자로 결함을 파악했으나 방치해온 것도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 됐다. 드라마 속에서 진상을 조사하던 과학자 율라나 뮤호크가 “전반적 기술 부족에 안전 규정도 위반했고 황당할 정도로 무모했다. 하지만 폭발은 잘 모르겠다”고 말한 것은, 한 사람의 안일함이 아닌 켜켜이 쌓인 문제로 참사가 빚어진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러는 동안 체르노빌 주변에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져버렸고 사고 수습에는 광부, 소방관, 군인, 연구원 등이 안전 장비 없이 투입돼 목숨을 잃었다.

<체르노빌>을 본 국내 시청자들은 왓챠 리뷰란에 “33년 전의 참사가 여전히 공포스럽게 느껴지는 이유” “이 비극적인 폭발은 한 순간의 판단 미스로 인한 사고가 안라 소련의 거짓이 쌓이고 싸이다가 결국은 진실 앞에 굴복하게 된 사건” “방사능의 공포, 관료주의의 공포, 무지와 은폐의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고 남겼다.

<그날 밤, 체르노빌> 체르노빌 원전사건의 전말

<그날 밤, 체르노빌> 표지. 애덤 히긴보덤 지음, 김승진 옮김/이후·3만2000원

영국 저널리스트 애덤 히긴보덤은 2006년 체르노빌 20주기를 맞아 사건을 취재하다 그로부터 10년 이상을 이 사건에 매달리게 됐다. 그는 기밀 해제된 공산당 정치국의 회의록과 당시 사건을 경험한 이들의 회고록, 과학자들의 조사 보고서와 연구 논문, 일반인들의 사진과 일기, 편지를 그러모아 체르노빌 원전사건의 전말을 촘촘하게 재구성해 소설의 형태로 재탄생시켰다.

책에는 방사능이 거리에 퍼져나가는 데도 위험을 숨기려 한 소련 당국의 비밀주의에 대한 고발과, 참사 이후 현장을 수습한 작업자와 기술자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 특히 저자는 책에서 제대로 된 안전복 없이 방사능을 뚫고 들어갔던 작업자들과 피폭이 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다른 폭발을 막기 위해 원자로 아래로 향했던 기술자들, 또 혼란스러운 와중에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애쓴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저자는 이들에 대해 “잠든 아들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집을 나선 이들이야말로 그날 밤의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말한다.

영화 <후쿠시마의 미래>의 한 장면

<후쿠시마의 미래>후쿠시마가 만난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25년 뒤인 2011년 3월10일 발생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공개된 이홍기 감독의 다큐멘터리 <후쿠시마의 미래>는 사고 이후 체르노빌로 떠난 일본 시민들 17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방사능 피폭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에 의심을 거둘 수 없던 이들이 일본 전역에서 모여 ‘시민 조사단’을 꾸리고 위험 구역인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사고 지역 등을 직접 방문한다.시민 조사단이 체르노빌에서 무엇보다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후쿠시마 어린이들의 미래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국립암연구소 소아과병동에서 체르노빌사고 당시 피폭 당한 부모에게서 유전돼 암에 걸린 환자들을 본다. 또 원전사고에 의한 악성 백혈병은 공격적이기에 더욱 치료하기 어렵다는 점과 방사능 피폭은 본인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닌 후대로 걸쳐 이어지는 비극이라는 점 등 우울한 사실을 확인받는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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