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종부세 역주행'이 부를 역풍 / 홍장표

한겨레 2021. 4. 26. 12: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읽기]

홍장표 ㅣ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4·7 보궐선거가 여당의 참패로 끝난 후 야당은 보유세 인하와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로 부동산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이에 여당은 성난 민심을 달래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처참한 성적표를 받는다는 위기감에 정책 보완에 나섰다. 관련해 종합부동산세를 내리고 대출 규제도 풀자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뜨겁다.

성난 민심을 푸는 열쇠가 종부세 개편이라니,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아마 이런 얘기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종부세와 같은 보유세 부담 증가가 여당 패배의 주요한 원인이다. 그런데 집값 하향 안정은 어렵고 오를 가능성이 더 크니까 조세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현행대로 1주택자 종부세가 공시가격 9억원 기준으로 부과되면, 서울에 집 가진 사람의 16%가 내게 되고, 언젠가는 모두가 내는 ‘서울 거주세’가 될지 모른다. 다음 선거에 대비하려면 종부세가 부과되는 6월 이전에 법을 바꿔야 한다. 종부세 공시가격 기준을 상향 조정하든지 전국 상위 1~2%로 묶어두면 집값이 올라도 대상자는 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런 생각이라면, 선거에서 드러난 부동산 민심을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다. 여당 패배의 주된 원인이 과연 종부세였나? 부동산 민심은 하나의 결이 아니었다. 서울 강남에서는 종부세를 내리고 재건축 규제도 풀어달라는 특수한 이해를 표에 담았다. 반면 서울과 부산의 중저가 주택 소유자들은 강남이나 서울과의 집값 격차 확대로 인한 박탈감을 드러냈다. 한편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졌고, 청년들은 계층이동 사다리가 막혔다는 좌절감으로 투표했다. 부동산 민심은 계층별로 달랐다. 하지만 집값 상승을 막지 못한 정부에 대한 실망과 엘에이치 사태로 드러난 공직자의 반칙으로 투기 근절 의지조차 못 믿겠다는 국민적 분노는 공통적이었다. 여당은 서울 강남뿐 아니라 25개 구 전부, 종부세 이슈와 무관한 부산에서도 모두 패배했다. 종부세가 아니라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 추락이 패배의 근원이었다.

민심은 투기와 반칙, 집값 상승으로 자산 불평등이 극심해진 현실을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집값이 올라 수억원의 시세 차액이 생겼는데, 예정된 부과 기준 시점을 눈앞에 두고 법까지 바꿔 종부세를 빼주겠다는 건, 희망을 잃은 청년과 서민들의 박탈감은 안중에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물론 정책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소득이 없거나 담세능력이 취약한 고가 1주택자들의 보유세 부담 문제는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종부세 부과 대상을 줄인다고 이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1주택 은퇴자에 대해 과세이연제도를 도입하고, 주택연금 가입의 가격요건을 폐지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재산을 소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옳은 해법이다.

부동산 시장은 어떤 시장보다도 정책 신호에 민감하다. 투기 열풍이 거셀 때는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풀겠다는 말만 나와도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된다. 보궐선거로 부동산 시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선거 이전에는 집값 상승률이 둔화되고 매수세가 약화되는 등 집값 불안이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다. 그런데 야당의 승리로 재건축 아파트 가격이 다시 치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에서 나온 종부세 개편과 대출 규제 완화 카드는 되살아난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시장에서는 이 카드를 세개의 신호로 읽을 것이다. 첫째, 집값 하향 안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둘째, 세금을 깎아주고 대출을 풀 것이니 기다리지 말고 집을 사라. 셋째, 확정된 정책도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니 정책은 시행 전까지 믿지 말라. 이 세개를 종합해서, 정책 후퇴와 역주행으로 가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책이 원칙과 방향을 잃으면 신뢰 추락은 돌이킬 수 없다.

그간 정부는 투기 열풍을 잠재우고 집값을 안정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는 떨어졌고 정책 의지조차 의심받고 있다. 투기를 발본색원하고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대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2·4 대책에서 약속한 공급 확대로 무주택자의 불안 심리를 해소하고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민심에 부응하는 길이다. 그러지 않고 역주행의 길로 접어든다면, 서울에 좋은 집 가진 사람 편에 서서 집값은 올려놓고 세금은 깎아줘 결국 자산 불평등을 조장했다는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