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전 칼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한겨레 2021. 4. 26.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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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전 칼럼]장애인을 차별하는 비장애중심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능력주의(능력에 따른 공정한 차별)임을 최근에야 알았다. 나의 억압과 나의 해방에 이름을 찾은 기분이다. '전교 1등'이 사회적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쥘 때 반대편에서 '능력 없는 인간'인 장애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시설에 감금된다. 그리고 그 스펙트럼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지난날의 나처럼 고통받는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임시 교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동숭동 유리빌딩 주차장 천막에 수업중임을 알리는 글귀 등 학생들이 장식한 다양한 메모들이 걸려 있다. 이정아 기자

홍은전 작가·인권 동물권 기록활동가

평범한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나에게 삶은 선착순 달리기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 체육 시간,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뛰어!” 10등까지를 가려낸 후 그는 다시 호루라기를 불었다. “뛰어!” 나머지들은 또 달렸다. 꼴찌 그룹을 만들어내어 기합을 주는 게 목표인 그런 달리기였다. 달리기를 못하는 애였던 나는 그 상황이 몹시 무서웠다. 낙오자가 되기 싫어 죽을힘을 다해 달리면서도 뒤처진 친구들을 보며 안도하는 내가 너무 싫었던 그날, 가장 열심히 가장 마지막까지 달린 아이들이 벌을 받았다. 사색이 된 친구의 얼굴, 선생의 비릿한 웃음, 나의 두려움과 굴욕감…. 그날의 모든 것이 트라우마처럼 내 몸에 각인되었다.

대학 4학년 때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 노량진 학원에 등록했다. 거대한 선착순 달리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임용의 문은 바늘구멍처럼 좁은데 달리는 사람은 노량진 바닥에 강물처럼 흘러넘쳤다. 책 읽으며 나누었던 좋은 가치는 모두 합격 이후로 유예되었고 사람들은 옆 사람을 경계하며 미친 듯이 자기를 착취했다. 나는 끔찍하게 우울했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고 온종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살다간 죽을 것 같았던 어느 날 나는 인터넷을 뒤져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갔다.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차별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조차 다니지 못한 또래의 장애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 선착순 달리기에서 가장 먼저 배제된 사람들이었다. 나의 첫 임무는 신림동에 사는 여성을 야학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이나 화장실 앞의 계단 같은 것들이 모두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너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같은 말이었다. 휠체어를 탄 그를 들고 지하철역을 오르고 내리기 위해선 시민들을 향해 무수히 외쳐야 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온 우주가 나서서 우리의 이동을 방해하던 그 길을 생각하면 우리는 마치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 같다. 이 세상이 너무도 낯설어서 야학에 도착한 우리는 미지의 땅을 찾아 나선 용감한 탐험가들처럼 빛나는 모험담을 하나씩 품게 되었다.

낮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수업을 했다. 낮과 밤의 세계가 너무 달라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어떤 이는 평생 죽을힘을 다해 달려왔는데, 어떤 이는 평생 같은 자리에 누워 창밖만 바라보았다고 했다. 모두가 전력 질주하는 낮의 세계는 강한 사람들로 가득 찬 황폐하고 허약한 세계였다. 그와 달리 둥글게 둘러앉은 밤의 세계에는 눈부신 생기와 에너지가 가득했다. 약한 사람들이 단단하게 연결된 아름답고 강한 세계가 나에게 속삭였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이곳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몇달 뒤 나는 선착순 달리기의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임용시험은 보지 않았다. 아무도 이기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면 내가 좀 근사해 보이는데 실은 그 반대였다.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았다. 질 것이 분명한 싸움이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다. 싸워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억압하는 세상이라고, 노들이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2001년 나는 이 근사한 학교의 선생님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때 나도 학생으로 입학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학교에서 배운 어마어마한 것을 그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간단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장애’와 ‘저항’의 렌즈를 통해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장애인을 차별하는 비장애중심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능력주의(능력에 따른 공정한 차별)임을 최근에야 알았다. 나의 억압과 나의 해방에 이름을 찾은 기분이다. ‘전교 1등’이 사회적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쥘 때 반대편에서 ‘능력 없는 인간’인 장애인들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시설에 감금된다. 그리고 그 스펙트럼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이 지난날의 나처럼 고통받는다. 사람들은 비장애인인 내가 장애운동을 하는 것을 ‘연대’라고 하거나 다른 이의 해방을 돕는 것이라 여긴다.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장애운동이란 이 세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목소리이자 이 사회의 설계를 완전히 바꾸는 운동이다. 버스를 점거하고 달리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든 그들은 내 인생도 아름답게 망쳐놓았고, 그것이 나를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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