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文·트럼프 서로 비난, 北 비핵화 'TV 이벤트'의 끝

조선일보 2021. 4. 26.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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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7년 청와대에서 악수하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성명을 내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도자로서, 협상가로서 약했다”고 공개 비난했다.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대북 정책을 “변죽만 울렸다”고 비판하자 바로 맞받아친 것이다. 자기 과시욕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트럼프가 “실패했다(failed)”는 문 대통령 표현에 발끈했을 것이다. 한미의 전·현직 대통령이 서로 폄훼하는 유례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2018년 싱가포르 미·북 회담을 앞두고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내실 것”이라고 했다. 미·북이 만나기도 전에 “노벨(평화)상은 트럼프가 받으셔야 한다”고 했다. 2019년 트럼프·김정은의 판문점 회동 직전엔 “위대한 변화를 만드는 주인공이 바로 트럼프”라고 했다. 방미 때는 “세계사의 엄청난 대전환”이란 말까지 했다. 트럼프가 ‘아부’에 약하다는 걸 알고 미·북 쇼를 위해 과도한 찬사를 보낸 것이다.

트럼프도 당시엔 “문 대통령이 뛰어난 리더십을 갖고 있다” “탁월하게 잘해왔다”고 했다.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를 거론하며 “항상 감사드린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와 친구 이상의 관계”라며 ‘브로맨스’를 자랑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이 낯뜨거운 칭송을 주고받는 사이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을 빠르게 증강했다.

지난 3년 동안 문 정권과 트럼프는 북핵 폐기의 실질적 내용이 아니라 TV 쇼에 몸이 달아 있었다. 청와대는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부풀려 전해 트럼프의 ‘쇼 본능’을 자극했다. 트럼프는 싱가포르에서 ‘내용 없는 성명에 서명하고 승리를 선언한 뒤 떠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다. 북핵 폐기가 어렵다는 걸 알고도 미 유권자들에게 ‘승리’를 선언하는 쇼를 한 것이다.

그 TV 쇼에 한·미 연합 훈련이 희생됐다. 하노이 회담 때도 미·북 간 비핵화 실무 협상은 부진한데 TV를 위한 의전 협상은 활발하게 이뤄졌다.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김정은과 단 4분여 만날 수 있었다. 트럼프는 쇼를 독점하고 싶었고 김정은도 문 대통령을 꺼려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미·북이 사실상 적대 관계를 종식했다”고 선언했다. 북핵 폐기는 완전히 뒷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김정은 회동을 “방송용”이라고 했다. 백악관은 “김정은을 만날 계획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 폐기는 실수”라며 트럼프처럼 미·북 이벤트를 다시 열라고 촉구했다. 문 정부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남북, 미·북 쇼를 재개하려 안달하고 있다. 그러나 TV 앞 연기만으로는 단 한 발의 북핵도 없어지지 않는다. 미·북 이벤트가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는지를 문 대통령과 트럼프의 삿대질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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