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내가 만난 名문장]

2021. 4. 2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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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임명되었다.

영국인 중 900만 명이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외로움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통계와 함께였다.

외로움이란 뭘까? 해나 아렌트는 '자아를 잃어버린 상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상태,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줄 동료가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의 외로움이란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데서 생겨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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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경청은 치유할 수 있다… 공동체는 경청하는 집단이다” ―한병철, ‘타자의 추방’ 중

2018년 1월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임명되었다. 영국인 중 900만 명이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외로움이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 건강에 해롭다는 통계와 함께였다.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도 외로움에 대한 여론조사가 있었다.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이 조사에서 놀랍게도 응답자 중 26%가 거의 항상, 혹은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며 상시적 외로움을 호소했다.

외로움이란 뭘까? 해나 아렌트는 ‘자아를 잃어버린 상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상태,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줄 동료가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분석은 명쾌했지만 개인적으론 이 시대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의 본질을 온전히 설명하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병철의 글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대의 외로움이란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데서 생겨나는 건 아닐까.’

개인화된 세상에서 고통은 모두 사유화된다. 특히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각자도생의 세계에서 고통은 철저히 개인이 감당할 몫이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는 윤리를 뼈에 새겨 넣으며, 우리는 나의 세계에서 타자를 추방한다. 그 어느 시대보다 분주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타자의 말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다. 이런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타자의 미덕은 내게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 것이다.

호소할 수 없는 고통이 쌓이면 외로움이 된다. 각자의 입안에 갇힌 고통의 언어들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그래서일까. 지금 이 세계에선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존재가 있다는 그 자체로 행운이다. 내 말을 들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치유된다. 그렇다. 고통을 함께하는 것이 공동체라면 한병철의 말처럼 당연히 ‘공동체는 경청하는 집단’이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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