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존버'라는 당의정 / 이승준

이승준 2021. 4. 2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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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보름달 사진.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승준 l 사건팀장

‘존버’는 ‘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은어다. 주식투자자들이 쓰던 이 표현은 몇년 전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즈아’와 함께 대박을 꿈꾸는 주문이 됐다. 존버는 의미를 확장해왔다. 어느 분야에서 오랫동안 참고 버티면 빛을 볼 수 있다는 의미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존버는 승리한다’는 주문은 비루한 현실을 참고 견디게 하는 ‘당의정’이 됐다.

최근 존버가 다시 소환된다. 2030세대 중심으로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늘며 존버를 언급하는 이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공개한 4대 암호화폐 거래소(빗썸·업비트·코빗·코인원) 투자자 현황을 보면, 올해 1분기 신규 가입자(암호화폐 계좌에 실명계좌를 연동한 이용자) 10명 중 6명 이상이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암호화폐 열풍은 언젠가 안정기에 접어들겠지만, 지금의 열풍은 2030세대의 ‘어떤 선언’으로 읽힌다. 미래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근로소득 그래프를 최종 폐기 처분하고, 알파벳 제이(J) 모양의 아름다운 곡선이 어른거리는 암호화폐 그래프에 올라타겠다는 선언 말이다. “자기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는 희망고문에 더는 속지 않겠다는 분노, 일터에서의 ‘존버’는 승리할 수 없다는 자조 등의 감정이 이들의 선언에 뒤섞여 있다. 부동산·주식과 견줘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암호화폐 투자에 이들이 뛰어드는 건 ‘막차’에 탑승하겠다는 간절한 의지로 읽힌다. 이러한 막차에 탈 엄두를 못 내는 청년들도 많지만 이들 역시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벗어나길 꿈꾼다.

암호화폐 시장이 ‘도박판’과 비슷하다는 건 이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코인 잘 모르지만…벼락거지 마지막 탈출구로 몰리는 2030’(<한겨레> 22일치 2면) 기사를 위해 사건팀원들이 만난 2030들은 “카지노 홀짝에서 내 손모가지를 거는 것과 같다”, “돈 놓고 돈 먹기를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코인판’에 들어가 ‘대박 꿈’이라도 꾸고 싶다고 말한다. “몇달 전 본 집값이 5억이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7억이 됐길래 내가 시공간을 초월한 줄 알았다. 돈 있는 사람들이 부동산이라는 큰물에서 논다면 나 같은 사람은 푼돈으로 코인이나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하는 30대 직장인에겐 하루하루 자산 격차가 벌어지는 코인판 밖의 세상이 더 비현실적이다.

“‘난 이게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해.’ ‘우리 같은 애들’이라는 세 어절이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계속, 또 계속 맴돌았다.” 암호화폐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장류진, 창비)의 한 대목은 이들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 같은 애들’은 작은 원룸에 반전세로 살며, 빠듯한 월급으로 주거비·생활비를 치르고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종종거리는 청춘이다.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는 암호화폐다. 소설은 ‘별다른 혁신도 자극도 없이 (…) 도무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암호화폐에 투자해 ‘투더문’(To the Moon,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사들인 코인값이 달까지 수직으로 상승하길 바란다며 쓰는 표현)을 꿈꾸는 이야기다.

소설은 달콤하게 마무리되지만 현실에선 모두가 달에 닿을 수 없다. ‘존버는 승리한다’는 주문 역시 소수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암호화폐 존버’라는 희망마저 잃고 나면 이들에게 무엇이 남을까. 당의정이 될 만한 무언가가 새롭게 나타날 수 있을까. 결국 정부나 정치가 답해야 할 질문이다.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얘기를 해줘야 한다”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최근 발언 자체는 ‘어른’이라는 표현을 정부나 정치로 수정한다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어른’들이 “잘못된 길로 이끈 게 바로 당신들 아니냐”는 질문부터 답할 수 없다는 데 있다.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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