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 김현 [최지선의 내 인생의 책 ①]

최지선 | 대중음악평론가 2021. 4. 2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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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거나 쓰거나, 그게 삶

[경향신문]

나에게 좋은 책이란 질문이 돋아나는 책이다. 텍스트 읽기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 책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한국 문단의 거목 김현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관점이나 문체가 직접적 영향을 준 것은 아니지만 창작에 대한 막연한 열망과 좌절이 교차하던 시절,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필치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 김현의 유고집이 출간됐다. 당시엔 잠언집 또는 아포리즘처럼 그의 문장을 읽었다. <책읽기의 괴로움>(1984)의 짝으로서 ‘책읽기의 즐거움’으로 의도했을 1986~1989년 사이 김현의 글들은 비평가의 사유의 풍광을 잘 드러내는 도안이다. 온전한 비평문이 아닌 경우가 많지만 오히려 단상과 스케치의 일격이 인상적이다. 사려 깊고 섬세하면서도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죽음이 가까이 오고 있던 시기에 적어내려간 일기라 더 진솔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죽음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심리적 여건’이라거나, ‘시간의 정지’가 아니라 ‘심리적 반응’이라는 문구를 나는 다르게 읽었다. “아, 살아 있다”는 마지막 문장도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인간의 실존으로, 부단히 깨어 있는 삶에 대한 자각으로 오독하고 싶었다. 그는 그렇게 지금도 살아 있다.

비평가의 책(에 대한) 일기, 또는 책읽기는 작품 읽기이자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읽는 일이다. 나아가 타인의 글에서 사유를 이끌어내는 책읽기의 사적인 행위는 그것을 넘는 공적인 공유가 된다. 그렇지만 <책읽기의 괴로움>에서 밝혔듯 “책을 통해 불행이나 결핍이 되어, 충족이나 행복을 싸워 얻게 하는 움직임”이면서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작업’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진심을 나눌 수 있는 문우 또는 제자들이 그의 곁에 함께 있었으니 행복하지 않았을까.

최지선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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