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選이 대한민국 바꾼다] 입법폭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 4. 2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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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진 국민의힘 (비례대표)
조수진 국민의힘 국회의원

선거법은 '선거'라는 게임의 규칙이다. 그런데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군소 정당과 손잡고 제1야당만 쏙 빼놓은 채 선거법을 강제로 채택해버렸다. 이름도 생소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 골자였다. 축구 하던 도중 느닷없이 한 팀이 상대팀 동의를 얻지 않고 자신들이 유리하게 규칙을 바꿔버린 것이다.

공수처(고위공직자수사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군소 정당에 던진 미끼였다. 선거제도와 수사 제도가 엿 바꿔 먹듯 처리됐다. 선거법은 누더기가 됐다.

석패율, 연동형비례대표제, 준연동형비례대표제, 연동형 캡 등 생경한 용어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제1야당은 예고했던 대로 방어 차원에서 비례대표 의석만 목표로 한 정당을 띄웠다. "쓰레기 정당" 등 맹비난을 퍼붓던 민주당은 대국민 약속을 뒤집고 슬그머니 비례정당을 창당했다. 한 달 뒤인 4월 15일 21대 총선은 현재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국회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룡 여당'이 탄생했다. 오만한 야당이 심판을 당한 결과였다. 국회법상으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 바짝 쪼그라든 야당의 초선(初選)이 됐다.

21대 국회 개원식은 7월 15일에서야 열렸다. 임기 시작일(5월 30일)로부터 48일 만이었다. 1987년 개헌 이후 '최장 지각 국회'였다. '야당 몫'이라 불리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요구하는 바람에 잇따라 수립된 기록들이다. 그래도 개원식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서'를 할 때는 대학교 입학, 신문사 첫 출근, 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통과의례를 치를 때마다 느끼던 벅찬 감정과 열정, 각오로 충만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24년 2개월의 기자 생활 중 3분의 2가량을 정치부 기자로 살았지만 '이번이 처음'인 진풍경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우선, 의석수에 따라 여야가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던 전통이 깨졌다. 1988년 13대 국회 때부터 이어졌던 전통이다. 국회는 민주화 항쟁(1987년 6월) 이전으로 회귀했다. 의장과 부의장 2명 등 3명으로 구성됐던 국회의장단도 파행의 여파로 야당 몫 국회부의장 선출이 물 건너갔다. 실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임대차법 등의 법안이 여당 단독으로 줄줄이 상정돼 기습 통과됐다. 경제계가 한사코 반대한 상법 개정안 등 경제 3법도 줄줄이 통과됐다. 부처 업무 보고, 법안심사소위원회 심사, 찬반 토론 등의 절차는 건너뛰었다. '기립표결'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입법, 사법, 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견제할 장치가 전무(全無)한데다, 대통령이 수장까지 낙점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의 공수처 설치법도 완력으로 통과됐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쥔 더 센 '괴물 수사 기구'가 거대 여당의 위력으로 탄생한 것이다. 정치의 출발점부터 국회 1년 차를 돌이켜보면 '민주당 입법 폭주의 시간'으로 압축할 수 있겠다. 입법 폭주의 시작점은 제1야당의 반대를 짓밟은 선거악(惡)법 개정안 강행 처리였다. 이로 인한 비례용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나는 '야당 초선'으로서 본회의, 상임위에서 무력감을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지난 4·7 보궐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참패했다. 총선을 치른 지 1년도 되지 않아 이번엔 여당이 혹독한 심판을 당한 것이다. 여당의 독선, 독주로 인해 야당은 '전국 선거 4연패'의 사슬을 끊을 수 있었다. 열 달여 뒤엔 대선을 치른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 창출이기에 '야당 초선'의 목표는 당연히 '여당 초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 밖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은 당내 대선 주자들의 지지율을 한참 웃돈다. 4·7 보궐선거만 봐도 제1야당은 다시 유권자의 매서운 심판에 직면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심판" 대신 "야당이기에 표를 줬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노력'이란 단어만으로는 부족하다. 코로나 19 장기화로 악화한 양극화, 청년실업 등 당면현안을 타개할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시급하다. '정권심판론'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독일의 사상가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열정이다. 대의(大義)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뜻한다. '권력 추구'를 본질로 하는 정치의 세계에서 정치인의 열정이란 대의를 위한 헌신이다. 두 번째는 책임 의식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인의 열정은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할 경우 정치는 왜곡된다. 권력, 권력자를 숭배하는 행위는 '정치의 적(敵)'이다. 세 번째는 책임 의식을 단련하기 위한 균형감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실에 발을 디뎌야 한다.

'진정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에 대해 베버는 굴하지 않는 권력 의지와 신념을 꼽았다. 정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직면할 수 있는 온갖 어려움에도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갖췄다는 것이다.

내년 3월 '여당 초선'이란 목표가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또, 내년 3월 결과와 관계없이 '공룡 정당'은 스스로 깨지지 않는 한 22대 국회가 개원하는 2024년 5월 말까지 마음먹은 대로 국회를 들었다 놨다 할 것이다. 상황 변화와 관계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열정과 책임, 균형감각, 신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뿐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할 수 있도록 스스로 채찍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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