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관객, 객석 아닌 무대로 끌어올린 유쾌한 실험

이향휘 2021. 4. 2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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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박상영 원작 소설
유머와 눈물로 무대 뒤범벅
소설로 읽었을 땐 피식 웃음이 나는데 연극을 보는 중간에는 깔깔깔 크게 웃게 된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에 여러 사람과 같이 한 공간에서 작품을 즐기기 때문일까.

최근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공연의 맛을 제대로 보여 준다. 원작자 박상영에게 2018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안긴 작품이다.

진짜 경험담을 쓴 듯한 생생한 소설 속 대사는 배우들의 육성과 몸짓을 타고 리드미컬하게 날아오른다. 극중 주인공 '나'는 성소수자 영화 감독으로 인권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했다가 "술 먹고 섹스하는 홍상수 아류작 아니냐"는 혹평에 "여자 한 명 안 나오는 홍상수 영화가 어디 있느냐"고 반박하는 찌질하지만 발랄한 남자다. 파국으로 치닫는 영화제 뒤풀이 장면이 소설에서도 압권이지만 연극 무대에서도 몰입도가 상당하다. 치고받는 쫄깃한 대사가 일품이다. 다소 긴 제목에 '자이툰'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주인공은 이라크 자이툰 부대에 파병 갔다가 샤넬 향수를 독하게 쓰는 '왕샤'와 만나 가까워진다. 성소수자 사랑은 뭔가 무겁고 더 절절할 것이라는 편견에 대해 주인공은 이렇게 쏘아붙인다. "당신들은 평범하고 발랄한 동성애자들은 현실성이 없고 순전히 다 지어낸 것 같겠지. 애초에 보통의 존재로 생각한 적조차 없었겠지."

사회의 일방적 시선을 거부하는 극의 주제에 맞게 연출은 다층적 시점을 무대로 끌어온다. 관객은 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에 놓인 30여 개 의자에 마음대로 앉는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의자다. 불이 꺼지면 배우들은 회전의자 사이를 가로지르며 무대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무대 오른쪽에서 벽화를 그리다가 무대 앞 난간이나 빈 '객석'에 등장하기도 한다. 관객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려 바라본다. 정해진 시점이 없는 것이다. 마치 원근법을 없애고 다양한 시점을 가능하게 한 입체파 화가의 화폭을 보는 것과 같다. 임지민 연출은 "극장의 본질, 공연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관객들이 마음대로 보는 프레임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며 "여러 세계가 서로 부딪히면서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 주고 싶었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관객들의 공감대를 끌어올리는 것은 인물들의 자잘한 실패담이다. 연애든 꿈이든 그들은 번번이 좌절하고 무너져 내린다.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는 고백엔 웃음 반 눈물 반이 진하게 섞여 있다. 공연은 5월 10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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