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정치가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 / 야마구치 지로

한겨레 2021. 4. 2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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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코로나19 세계 대유행]

야마구치 지로 |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최근 치러진 한국의 양대 도시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압승해 문재인 정부는 큰 타격을 입었다. 필자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문 대통령에게 공감을 가져왔기 때문에 선거 결과엔 유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토지개발을 둘러싼 권력 남용과 부정이익 추구가 이뤄진 이상 한국인들이 분노하고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는 투표를 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란 실패하거나 죄를 지은 권력자를 경질하기 위한 구조다. 한국 시민들은 민주주의라는 무기를 행사하면서 종종 거만한 권력자를 벌해왔다. 그 점은 일본에서 보면 매우 부럽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정부는 정치인의 부패 스캔들이 일어나고 코로나19 대책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2년 전 참의원 선거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가와이 안리 후보가 금품을 뿌려 유죄를 받았고, 그 후보의 남편이자 법무상을 지낸 정치인 가와이 가쓰유키는 의원직을 사퇴했다. 당시 자민당 본부로부터 1억5천만엔(약 15억5천만원)의 자금이 후보자에게 갔는데도 돈의 흐름은 상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스가 총리의 장남이 일하는 위성방송 관련 회사가 총무성 등 감독관청의 고위 간부에게 불법적인 접대를 하고 각종 예우를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아베 신조 정부 이래 정치인들의 금품 스캔들이 너무 많아 국민들이 일일이 화를 내기도 힘들 정도다.

코로나19 대책에서 일본 정부의 실패는 분명하다. 최근 1년간 피시아르(PCR) 검사 건수는 다른 선진국과 견줘 극히 적다. 백신 접종 수도 선진국 중 최저 수준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를 보면 인구 100명당 접종 횟수는 영국·미국이 60여회, 독일·프랑스가 25회 안팎, 한국이 3회, 일본은 1.5회다. 지난해 가을 2차 유행이 가라앉은 뒤 정부는 관광을 하면 보조금을 주는 사업인 ‘고 투 트래블’을 대대적으로 시행해 연말부터 다시 감염이 확산되는 원인이 됐다. 올해 들어 3차 유행이 잦아들면서 긴급사태 선언을 해제했으나 현재 오사카와 도쿄에서 감염자가 급증해 다시 긴급사태가 발령됐다. 특히 오사카의 의료체제는 위기상태다.

일본에서는 25일 국회의원직 사퇴 및 사망에 따라 3개 선거구에서 보궐선거가 실시됐다. 사전 여론조사에서는 자민당 후보의 고전이 예상됐다. 자민당은 1개 선거구에선 후보자를 내지 않았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모두 승리하더라도 정권이 교체되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스가 정부 지지율의 하락세가 멈췄다. 야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진 것도 아니다. 올해 10월 중의원 임기가 끝나 총선거를 치러야 한다. 현재 민심을 토대로 전망하면 정권교체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정치적 의사표시에 대해 일본과 한국 국민은 대조적이다. 정치인이 실패와 부패를 계속해도 국민이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정치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는 사이 일본의 국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일본 내에서는 개발할 수 없다. 도쿄대학 연구자가 아르엔에이(RNA) 백신 개발을 추진했으나 정부가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아 중간에 중단됐다고 한다. 바이러스 감염자와의 접촉 여부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도 고장이 나 쓸모가 없게 됐다. 이런 사실은 필자처럼 전후의 경제성장과 기술대국의 시대를 봐온 사람에게는 충격이다.

부패한 정치인을 규탄하는 일이 일시적 불만 해소로 그친다면 정치적 의사표시는 의미가 없게 된다. 정치의 문제를 시정하는 것을 계기로 정책을 재검토하고 국가의 진로를 전환하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올가을까지 치러야 할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은 정체를 벗어나기 위한 비전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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