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살이] 그림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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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배우기 전 아이는 세계를 그림 비슷하게 받아들인다.
이름 없는 세계를 그림(이미지)으로 받아들인다.
세계를 그림처럼 아로새기고 있던 아이를 습격한다.
그런데 그림이든 말이든 이 세계를 무심히 그려내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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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말을 배우기 전 아이는 세계를 그림 비슷하게 받아들인다. 이름 없는 세계를 그림(이미지)으로 받아들인다. 쪼개고 베어내어 이름 붙이지 않는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 먹여주고 씻겨주다니 이 세계는 믿을 만하다. ‘빨주노초파남보’를 모른 채 보는 무지개는 얼마나 온전하고 아름다운가. 희로애락의 감정은 추상적이지 않고 몸으로 체험되고 기억 속에 각인된다. 머릿속 그림은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린다. 구체의 세계, 육감의 세계이다.
말은 세계를 베어내는 칼이다. 세계를 그림처럼 아로새기고 있던 아이를 습격한다. 말은 개체가 갖는 단독성과 관계성을 없애고 공통점을 찾아 추상화한다. ‘나무, 괴롭다, 동물’이란 말은 추상적이다.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껴보기도 전에 꽃이 아름답다는 말을 먼저 배운’ 사람에게, 그 말은 ‘꽃의 아름다움을 꺾는다’(<최초의 습격>, 고은강). 사람들이 글보다 이미지나 동영상에 환호하는 것도 달리 보면 어릴 적 본능을 회복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미지는 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원초적인 도구이니까.
그런데 그림이든 말이든 이 세계를 무심히 그려내지는 못한다. 차별한다. 이 세계를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것, 먼 곳보다는 가까운 곳에 더 눈길을 준다. ‘나’와 ‘나 아닌 자’, ‘지금’과 ‘지금 아닌 때’, ‘여기’와 ‘여기 아닌 곳’을 기준으로 구별한다. 물리적 거리는 마음속 거리감으로 바뀌어 친한 사람은 가깝고 모르는 사람은 멀다. 도덕, 즉 옳고 그름의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가까움’은 옳고, ‘멂’은 그르다. 이 구별 본능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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