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돌봄 경험 책 쓰기

한겨레 2021. 4. 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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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현의 ‘몫’]

조기현 ㅣ 작가

아침에 연 메일함에서 반가움을 가득 느낄 때가 있다. 아픈 가족을 돌본 청년들의 메일을 볼 때다. 2년 전에는 아픈 가족을 돌보는 청년 모임을 만들려다가 사람이 모이지 않아서 포기했었다. 당사자를 찾기도 쉽지 않은데다, 찾아도 즐겁지도 않은 이야기를 왜 굳이 나눠야 하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요 몇년 사이, 아픔과 돌봄을 주제로 한 책과 연재가 늘어나 관심이 있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내 책을 비롯해 아픈 가족을 돌본 청년들의 이야기도 재작년과 작년에 연달아 나왔다. 그중에서 세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떤 이가 문득 자신의 간병 상황을 비춰보고 싶을 때 좀 더 수월하게 정보를 찾으면 좋겠다.

가장 최근 나온 책은 윤이재의 <아흔 살 슈퍼우먼을 지키는 중입니다>이다. 저자는 마지막 휴식처럼 대학 졸업을 미루고 본가에 들어간다. 가족들은 집에 있는 취업준비생에게 자연스레 할머니를 봐달라고 한다. 할머니는 치매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숙식 제공받고 무급으로 주 5일 근무하는 할머니의 간병인이 되었다”.

그는 한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할머니의 삶과 말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겪지 못한 시대를 성찰하게 하고, 가부장제와 맞서는 힘을 낳는다. 가부장적 문화는 엄마와 손녀인 자신에게 할머니를 전담하게 했음에도, 장례식에서 남성들이 중심이 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그런 상황에 저항하는 이 책의 클라이맥스는 사적으로 여겨지던 문제를 공적으로 끄집어내는 통쾌함을 전해준다.

전용호의 <나대지 마라, 슬픔아>는 스무 살 때부터 8년간 루게릭병을 앓는 엄마를 돌본 이야기다. 저자는 군대에 있는 동안 엄마가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소방관 시험을 보다가 답안지를 백지로 제출한다. “이대로 소방관이 되어 남들을 살릴지 몰라도 내 엄마의 죽음을 방치하는 건 아닐까.”

원인 모를 엄마의 질병을 고치고 싶은 아빠는 각종 약재를 사들이고 종교나 의료 사기 등도 마다하지 않는다. 장애인 등록을 낙인으로 생각한 가족은 공적 지원을 받지 않고 오로지 사적 자원으로 24시간을 돌본다. 저자와 누나가 번갈아 가며 엄마를 돌보는 모습을 본 친척들은 누나를 효녀라고 추켜세우지만, 저자에게는 남자는 밖에서 일해야 한다고 나무란다. 가부장적 문화가 돌봄을 하는 여성을 어떻게 가두고, 돌봄을 하는 남성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의 두 책이 집에서 돌본 이야기라면, 김달님의 <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는 집, 요양병원, 요양원을 오가며 이야기를 펼친다. 저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에 큰 후 도시로 와서 혼자 생활했다. 시골집에 살던 두 사람은 노쇠해지고 함께 치매까지 왔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내가 지금을 포기하고 도시를 떠나올 수 있을까. 자신 없었다.” 그의 월급만으로는 버거운 요양병원 입원을 결정한다. 그에게 입원은 ‘포기’가 아니라 ‘다른 책임’을 지는 것이다.

요양병원을 매일같이 면회한 이야기에는 돌보는 마음과 보호자 역할의 갈등이 새겨져 있다. 입원한 노인의 자율성을 고민하는 섬세함도 돋보인다. 그는 노인의 선택권을 존중할 때 “젊음과 늙음이 대척점이 아닌 연장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세 권 모두 일독을 권할 만하다. 자신의 고민과 사정에 맞게 고르면 좋겠다. 혹자는 젊음에게 돌봄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특권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특권을 내려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언젠가 내 책을 읽은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미리 돌봄을 생각하며 마음의 체력과 맷집이 생겼다고. 책을 읽은 후 얼마 있지 않아 부모를 돌보게 된 그였다. 아픔과 돌봄과 죽음도 결국 우리가 마주할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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