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어쩌다가 '코로나 진주시' / 권영란

한겨레 2021. 4. 25.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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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

권영란 ㅣ 진주 <지역쓰담> 대표

“별 탈 없나예?” “하모, 그 집은 괘안나예?” 동네 할매 두분이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마스크 위 눈빛에서 반가움과 불안이 교차한다. 뚝 떨어져 몇 마디 주고받고는 허둥지둥 돌아선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며 6·25 전쟁은 난리도 아니라고 말한다.

잔인한 봄이다. 경남 진주는 지난 19일부터 다시 방역 2단계로 격상됐다. ‘목욕탕발’ 사건으로 초유의 집단감염을 겪었고 진정 국면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아이들은 아침 등교를 시작했고 카페와 식당, 주점은 활기를 어느 정도 띠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채 10일도 되지 않아 유흥주점 지인모임 감염 사태가 터졌다. 조용하던 인근 사천시, 산청군에서도 발생했다. ‘진주 탓’이라 여기는 분위기다. 다시 초비상이다.

지난 6개월 새, 진주시 확진자가 1000명 가까이 발생했다. 이 정도면 전국적으로 따져봐도 인구 35만명 지역으로 손에 꼽힐 듯싶다. 진주시는 지난해 11월 이전까지만 해도 누적 확진자 수가 고작 17명이었다. 그런데 올해 3월 이후 600명이 넘게 발생했다. 4월22일 기준 진주시 누적 확진자는 1013명이다. 인구 100만명 창원시는 누적 확진자가 662명이다. 진주시 확진자가 경상남도에서 제일 많다. 전국 타 지자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진주시에서는 지난 6개월 새 집단감염 사태가 세 차례나 터졌다. 1차 집단감염은 지난해 11월 ‘진주시청발’ 이·통장 제주 연수 사건에서 비롯됐다. 그 후 6개월 새 2차 ‘국제기도원발’, 3차 ‘목욕탕발’…. 집단감염 사건이 차례차례 발생했다. 진주시로서는 가장 최악의 상황들이 이어졌다. 연일 확진자 발생 알림 문자가 오고…. 2단계와 1단계가 여러 차례 되풀이되는 동안 지역경제는 마비되고 생계는 힘들어졌고 일상은 무너졌다.

진주시의 지난 6개월은 재난 6개월이었다. 그 기간 진주시의 행정력은 찾을 수 없었다.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포털사이트와 전국 뉴스를 타면서 도마 위에 오르내려도 진주시가 어떤 방역 조치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목욕탕발’ 집단감염이 터지니 그제야 목욕탕 안전수칙 강화 행정명령, 유흥주점 사태가 터지니 유흥시설 진단검사 행정명령을 내리고…. 엇비슷한 집단감염이 서너 차례 반복됐다. 1차 이후 2차 3차는 예측 가능했고, 조치 및 대비할 수도 있었다.

지방정부의 안일과 무능과 무책임이 초래한 사태였다. 한마디로 행정력 부재였다. 방역체계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진주시의 태도는 일관됐다. 경남도의 징계를 무시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시민들의 불안은 방관하고…. 지금 이 시각에도 진주시는 방역 시스템이 있기나 하냐, 피해를 어떻게 보상해줄 것이냐는 시민들의 원성과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급기야 지난 17일 진주시청과 진주시의회에서 동시에 확진자가 발생했다. 18일 오후부터 진주시청 8층은 폐쇄되고 진주시의회도 출입이 통제됐다. 진주시청 공무원들은 일괄 검사에 들어가고 일부는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행정 공백뿐 아니라 자가 방역에도 차질을 빚은 셈이다. 처음에는 하도 쉬쉬하는 바람에 시민들은 알지 못했다. 진주시의회 4월 임시회는 23일 하루만 열렸다. 35만명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정부의 행정력이 허점투성이다.

지금 진주시 행정은 어디에 있는 걸까. 책임도 없고 반성도 없다. 시민이 없는 지방정부에 자치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면 시민 스스로 권리를 행사해야겠다. 나오미 클라인이 <미래가 불타고 있다>에서 얘기했듯이 우리에게는 진전을 기대할 권리가 있고, 점진적인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또 위기를 빚어낸 책임이 가장 큰 세력에게 책임을 엄중히 묻고 요구해야 한다. ‘코로나 진주’를 빚은 진주시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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