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 노출로 폐 굳어져" 철강 제조업도 정부가 역학조사

신다은 2021. 4. 2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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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철강업체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다퉈야 했던 직업성 암과 작업 환경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정부가 공식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현재순 직업성암119 기획국장은 "근로복지공단이 포스코 노동자의 폐섬유화증을 60일 만에 인정한 이유가 '인과관계가 명확하다'고 봐서 역학조사를 생략했기 때문인데 3년 동안 무엇을 얼마나 조사하려는 것인지, 그동안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묻고 싶다"며 "조사에 연도별, 단계별 계획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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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연구원 3년간 조사
개인이 산재 다퉈야 했던 한계 개선될까
"현장 잘 아는 노동자·전문가 참여해야"
시민단체 직업성·환경성암119와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지난해 12월 포스코 직업성암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안전보건진단을 촉구하는 모습. 직업성암119 제공

#포스코에서 29년 근무한 정아무개씨는 지난 2019년 병원을 찾았다가 오른쪽 폐가 굳어져 제 기능을 못하는 ‘폐섬유화증’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선탄계 수송반에서 일할 당시 석탄 분진이나 코크스(석탄 덩어리) 오븐 가스 등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시민단체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직업성암119)와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산재)를 신청했고 석달 만인 지난달 ‘질병과 작업환경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한다는 근로복지공단의 답변을 받았다.

이처럼 철강업체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다퉈야 했던 직업성 암과 작업 환경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정부가 공식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준정부기관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협력업체를 포함한 포스코 제철소 소속 노동자와 1차 철강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직업성 암과 관련한 집단 역학조사를 실시한다고 25일 밝혔다. 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소속된 직업환경의학전문의와 예방의학전문의, 산업위생전문가 등 박사급 연구원 17명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조사를 진행한다. 공단이 반도체 제조 공정이나 타이어 제조 공정이 아닌 철강 제조업을 상대로 집단 역학조사를 실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단이 역학조사에 착수하게 된 건 직업성암119와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등이 지난해 12월 포스코 노동자 8명의 산재를 한꺼번에 신청하면서 안전보건진단도 함께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씨 외에도 폐암과 루게릭병, 세포림프종 등에 걸린 포스코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했다. 당시 포스코지회는 “제철소 직원들이 제선, 제강, 압연, 스테인리스스틸 공정에서 여러 발암물질에 노출된다”며 “폐암과 백혈병, 혈액암 등은 제철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직업성 암”이라고 지적했다.

포스코는 자체적으로 측정한 결과 작업환경의 석탄 분진이 기준치보다 낮고 흡연 등 신청자들의 개인 습관도 발병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들어 질병과 작업환경의 연관성을 부인해 왔다. 하지만 공단이 공식적으로 조사에 착수하자 “성실히 협조할 것이며 역학조사 결과 문제점이 확인되면 개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조사를 요구한 직업성암119 쪽은 조사 자체를 환영하면서도 기간이 3년으로 길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순 직업성암119 기획국장은 “근로복지공단이 포스코 노동자의 폐섬유화증을 60일 만에 인정한 이유가 ‘인과관계가 명확하다’고 봐서 역학조사를 생략했기 때문인데 3년 동안 무엇을 얼마나 조사하려는 것인지, 그동안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묻고 싶다”며 “조사에 연도별, 단계별 계획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포항제철에 재직하며 작업장 환경 요인을 평가했던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산보연이 역학조사를 맡은 삼성 반도체 사건 등을 보면 전문성은 있었지만 현장에서 문제를 보는 시각이 결여돼 있었다”며 “단순히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과 현장에서 실제로 문제가 될 요소를 하나하나 짚어주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현장 노동자나 외부 전문가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산보연은 2007년∼2008년 삼성전자 노동자의 백혈병 역학조사를 실시했으나 새롭게 조성된 작업환경을 토대로 하는 등 조사의 한계로 질병과 작업환경의 인과관계를 밝혀내지 못했다. 훗날 법원은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이 소장은 또 “작업환경이 가장 열악한 플랜트 노동자들과 하청업체 직원들이 포함돼야 하고 반드시 퇴직자들이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한다”며 “암은 퇴직 뒤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현직자로만 조사 대상을 한정하면 다른 사업장보다 되레 암 발생률이 낮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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