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밤새 블랙박스를 봤다..보험사기 수법이 보였다
"보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딱 들더라구요"
지난달 10일 오후. 추레한 행색의 A씨(21)가 경남 양산경찰서를 찾았다. A씨는 타고 있던 차량이 사고를 당했는데도 승객 중 자신만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몇 가지를 질문하던 경찰관은 목적지나 운전자의 이름도 잘 모르는 A씨에게서 이상함을 느꼈다. 경찰관은 밤을 새 사고 지점 근처의 렌트카 사고를 모두 뒤졌다. 33명이 가담한 보험사기극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서인수 양산서 교통범죄수사팀장(49)은 24년 경력의 베테랑 경찰관이다. 교통범죄 전문 수사를 맡은지도 5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새벽 1~2시까지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수사한다. 한 달 근무시간이 200시간을 넘길 때도 비일비재하다. 동료 수사관들은 서 팀장의 열정이 아니었다면 수십건의 교통범죄가 미궁에 빠졌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차량을 이용한 보험사기는 쉽게 덜미를 잡기 어렵다. 동승자들이 입을 모아 '고의 사고가 아니라 실수였다'고 주장하면 심증은 있더라도 물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운전자가 이틀 새 연달아 2건의 사고를 내고도 자백하지 않아 유죄를 입증하지 못한 사건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운전자나 동승자의 자백을 받는 것이지만 쉽게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이번 사건에서 실마리가 된 A씨의 입을 연 것은 서 팀장의 진심이었다. A씨가 처음 양산서를 찾았을 때에는 자신이 탄 차량에서 발생한 보험사기극 1건만 자백했다. 서 팀장은 '보험사기범이 친구나 아는 형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A씨의 말을 듣고 직접 A씨를 집까지 데려갔다. 다른 가담자들의 보복을 우려해서다. '생활이 어렵다'는 말에 차비까지 쥐어 줬다.
결국 A씨는 "이번 사건 말고도 렌트카를 이용한 보험사기가 더 있다"며 서 팀장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자백했다. 서 팀장은 전화를 받은 즉시 울산·양산 일대에서 발생한 렌트카 사고를 모두 뒤졌다. 그 결과 지난 2월 9일부터 울산에서 6건, 양산에서 6건의 사기극을 적발했다.
경찰 수사에서 주범들은 울산의 한 건물에 숙소와 사무실을 차려 놓고 가담자들을 끌어들인 사실이 드러났다. 당초 주범은 3명으로 파악됐으나 서 팀장이 매달린 끝에 지난 12일 1명을 더 검거해 4명이 됐다. 이들은 SNS를 이용해 가담자를 모집했다. '차에 타고 있기만 해도 30~40만원을 준다'고 홍보하자 순식간에 20대 초반 청년 29명이 모였다.
주범들은 신호를 위반한 차량을 골라 경미한 사고를 낸 뒤 상대 차량의 보험사에 합의금을 요구하는 범행 수법을 사용했다. 갓길 주차된 차량을 피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 차 등 어쩔 수 없이 신호를 위반해야 하는 차량을 노렸다. 주범은 가담자를 태운 차를 몰고 신호 위반 차량을 들이받은 뒤 조수석에 앉은 가담자와 자리를 바꿔 앉는다.
이 수법을 이용하면 주범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아 여러 건의 범죄를 일으키더라도 경찰이나 보험사가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또 경찰 수사망에 올라가는 것도 주범이 아닌 가담자다. 주범은 가담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봤자 경찰에 잡히는 것은 너희들'이라며 수시로 협박했다.
통상 차량을 이용한 보험사기의 경우 증거 확보가 어려워 수사에 6개월~1년 이상 소요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지난달 10일부터 주범 3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구속하기까지 1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서 팀장뿐만 아니라 모든 팀원들이 밤낮으로 사건에 매달린 결과다.
서 팀장은 강력사건 못지않게 교통범죄 수사의 중요성도 높다고 설명한다.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험사기 등 교통범죄가 많아질수록 보험사가 보험수가를 올리기 때문에 시민 부담도 늘어난다. 교통범죄가 단순한 사기가 아니라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범죄인 이유도 그래서다.
서 팀장은 "교통사고를 당하면 경찰관이어도 막막해지는데 일반 시민들이 범죄에 휘말리면 억울함을 누가 풀어주겠나"며 "강력사건 수사처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는 교통범죄에 끝까지 매달려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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