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믿고 매수하세요" 주린이 유혹 '스팸문자' 기승

김경택 2021. 4. 2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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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 전경.
"저는 한국거래소 출신으로 세력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 문자 한통으로 기회를 드리는 거고 문자를 보신 선생님은 잡기만 하시면 됩니다. 직접 들어와 눈으로 판단하세요."

하다못해 이젠 한국거래소를 사칭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최근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 수준에서 움직이면서 투자자들을 유혹하는 투자 권유 스팸 문자메시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부분 주린이(주식 입문자)들을 현혹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자칭 거래소 출신 채팅방에 개인투자자 1500명 육박…거래소 "우리 직원 아닌데"

주식 투자 스팸은 그동안 '확실한 수익률 보장', '선착순 급등주 추천', '미공시 정보 제공' 등 다양한 문구로 투자자를 유인하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거래소 출신을 자칭하며 본인들이 왜 상위 1% 세력인지 보여주겠다는 당돌한 문자 메시지도 나타났다. '한국거래소 기관투자자 출신 세력'이라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에도 그들의 오픈 채팅방에는 약 1500명의 투자자들이 가득했다.

투자자들은 대부분 운영자에게 종목 전망과 매수·매도 타이밍을 묻고 있었고, 자칭 거래소 출신의 대화방 운영자는 특정 종목의 특정 가격대를 거론하며 참가자들에게 주식 매수한 뒤 매수가를 인증할 것을 권하고 있었다. 이는 VIP 고객이 선취매한 종목을 일반 리딩방에 추천한 뒤 먼저 사들인 주식을 높은 가격에 넘겨 부당이득을 챙기는 전형적인 리딩방의 운영 방식이다.

해당 대화방의 운영자인 ○○○ 팀장은 참가자들에게 "한국거래소 출신으로 기관, 외인 세력까지 잡아내며 매매하고 있다"면서 "우리 KRX(한국거래소) 세력팀은 너무 다양한 과정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실제 해당 운영자가 근무했었는지 한국거래소에 측에 문의하자 "인사팀에 문의했지만 ○○○란 이름을 가졌던 직원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결국 한국거래소 출신이라는 주장은 거짓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거래소 출신임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아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면서 "한국거래소는 주식 리딩방 등 유사투자자문업체에 대한 집중 모니터링 등 시장감시를 강화하고 불공정거래 혐의 발견 시 신속하게 감독당국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미반도체 한화투자증권…스팸관여과다종목 4월에만 18곳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3월부터 '스팸관여과다종목'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스팸관여과다종목은 스팸 문자 신고건수와 주가 또는 거래량이 일정 기준 이상으로 증가한 종목을 말한다. 소위 '작전주'로 인해 투자자들이 피해 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만 유가증권시장 9곳, 코스닥 9곳 등 총 18개 기업이 스팸관여과다 사유에 따른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됐다. 종목별로는 한미반도체, 한화투자증권 등 조단위의 시가총액을 기록 중인 대형주들도 눈에 띈다. 이밖에 디피씨,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등 창업투자회사 테마주 열풍에 주가가 급등한 기업들도 다수 포함됐다. 투자주의 종목 지정 후에도 주가가 급등하면 투자경고 종목, 투자위험 종목까지 단계가 격상된다.

주식 투자와 관련한 스팸 문자는 도박 스팸 다음으로 만연하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광고 유형 분류가 가능한 문자 스팸 총 403만건 가운데 도박 스팸이 35.1%로 가장 많았고, 주식 광고 등 금융 스팸이 28.7%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 영향으로 주식 광고 등 금융 스팸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작년 한 해 신고 접수된 스팸 중에서 코로나19 관련한 스팸은 총 45만6412건이었으며 이 중 주식 스팸이 전체의 43.7%(19만9289건)로 가장 많이 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철저한 투자 정보 검증 필요…기업들 "스팸 때문에 작전주 전락"

문제는 이렇게 스팸 문자 등 소문을 타고 알려진 기업들의 주가가 실제로 움직이는 경우가 목격된다는 점이다. 스팸 문자를 받은 개인투자자가 해당 주식을 매수해 거래량이 늘고 주가도 오르는 경우다.

그러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이 추천하는 종목은 대부분 전날 시장에서 급등 또는 상한가에 마감을 했거나 장 마감 이후 진행되는 시간외단일가매매 때 오른 종목이다. 시간외단일가매매 때 올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이튿날 주가 상승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투자자 스스로 철저한 정보 검증을 거친 후에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기업들도 난처하다.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작전주로 묶이면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까 하는 우려다. 여기에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스팸 문자에서 거론된 기업들을 매수했다가 물려 애꿎은 회사를 탓하기도 한다.

가령 한화투자증권의 경우 최근 수년 간 주가 등락폭이 좁았으나 근래 두나무 미국 증시 상장 관련주로 묶이면서 극심한 변동성을 나타냈다. 특히 이달 초에는 2008년 10월 이후 무려 12년 반 만에 상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화투자증권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미 작전주로 통용되고 있다.

최근 스팸관여과다 사유로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된 모 기업 관계자는 "작전 세력과 엮인 회사로 낙인 찍히면서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를 많이 받고 있다"면서 "물론 주가가 오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 작전주라는 '주홍글씨'가 남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김경택 매경닷컴 기자 kissmaycr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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