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이 도발한 '최저가 보상제'..소비자 실속은 없다는데

윤희훈 기자 2021. 4. 25. 06: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즈톡톡]
대형마트 주도하는 유통가 '최저가 경쟁'
이커머스 성장 속 소비자에 '대형마트도 싸다' 인식 심어줘
사실은 마케팅 불과...품목 적고 日 3000원 한도 ‘쿠폰보다 싸’

최근 국내 유통가에 가격 경쟁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업계 내 출혈 경쟁을 야기한다며 사장됐던 '최저가 보상제'까지 14년만에 부활했습니다. 최저가 보상제는 우리 가게에서 구입한 상품이 옆 가게보다 비싸면 차액을 돌려주는 방식의 가격 보장 제도인데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연합뉴스

소비자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10원떼기'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지적과 최저가 경쟁 부담이 납품 제조업체들에게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최저가 보상제를 당분간 중단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 최저가 경쟁 나선 유통가…이마트·롯데마트 "쿠팡보다 더 싸게 판다"

최저가 경쟁의 칼을 가장 먼저 뽑은 것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입니다. 올해 초 프로야구팀을 인수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예고한 정 부회장은 '가격 경쟁을 제대로 해보자'며 '최저가 가격 보상 적립제'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마트(139480)는 지난 8일 마트에서 판매하는 상품 500여개를 선정해, 이들 제품은 업계에서 가장 싸게 팔겠다며, 경쟁사에서 더 싸게 팔 경우 차액을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e머니'로 돌려주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최저가 보상제 포스터. /이마트·롯데마트 제공

이마트가 최저가 보상제를 도입한 건 2007년 이후 14년 만입니다. 이마트는 자사의 가격 경쟁력을 강조하기 위해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최저가 보상제를 운영하다, 업계 '출혈 경쟁'을 지양하자는 취지에서 종료했었죠.

사장됐던 최저가 보상제를 이마트가 다시 꺼내든 것은 이커머스가 급부상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하는 대형마트의 실적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마트는 최저가 비교 업체 명단에 쿠팡까지 넣었습니다.

이마트의 선공에 롯데마트도 합류했습니다. 롯데마트는 15일 이마트가 제시한 최저가와 같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고, 엘포인트 적립률도 5배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습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들이 다양한 가격 비교 정책으로 최저가를 표방하고 있다"면서 "최저가 정책이라는 흐름에 합류해 고객이 믿을 수 있는 이상적인 가격 정책과 예상 가능한 혜택을 제공해 고객과의 신뢰를 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 '대형마트 싸다' 인식 심어주고…보험 장치로 보상 비용 부담은 줄여

이마트가 최저가 보상제를 시행하고 2주가 지났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소비자 후생 진작 효과는 미미하고 피로도만 높인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이러한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마트의 ‘빈틈없는’ 설계 탓인데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일부 품목만 대상…가격차 큰 ‘가전·신선식품’ 등 포함안돼

이번 최저가 보상제는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500여개 품목으로 대부분 가공식품과 생활용품입니다. 각 채널별로 가격 차이가 큰 가전제품이나 주방용품, 신선식품 등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가공식품과 생활용품은 원래부터 대형마트와 이커머스에서의 가격 격차가 크지 않습니다.

② 이커머스와 다른 상품규격...직접적 비교 어려워

또 상품 규격을 대형마트 판매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가격 비교가 어렵습니다. 단적인 예로 이마트는 'CJ전복죽'의 가격 비교 기준을 450g들이 1개로 잡지만, 쿠팡에선 6개 들이를 최소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에 최저가 보상제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업체 관계자가 진열된 상품을 정돈하고 있다. /연합뉴스

③ 하루 최대 3000원 보상...쿠폰보다 싼 마케팅 수단

여기에 이마트는 하루 최대 보상금액을 3000원으로 제한을 걸었습니다. 고객의 마트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3000원 상당의 쿠폰을 지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확 내려갑니다.

이마트는 작년 6월 10만원 이상 구매 고객에겐 5000원, 20만원 이상 구매 고객에게는 1만원 상품권을 지급하는 판촉 프로모션을 했었죠. 이번 보상제는 이보다 비용이 적게 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는 탁월합니다. 적용 대상이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단 소비자들에게 '대형마트도 이커머스만큼 싸다'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이번 최저가 보상제 마케팅에 합류하지 않은 홈플러스의 관계자는 "이커머스가 급부상하면서 대형마트에 대해 '저렴하게 물건을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많아졌는데, 이번 최저가 보상제 마케팅으로 상당 부분 불식시켰다고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대형마트의 최저가 경쟁이 납품업체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많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제조사의 관계자는 "가격 경쟁이 과열돼 납품가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거나 '1+1'이나 '2+1' 형태의 마케팅 참여를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을까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식품업체 관계자도 "아직까지 가격 인하를 압박하거나 타사에 납품하는 가격 정보를 요구하는 등의 구체적인 압력은 없지만 납품 기업 입장에서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