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현배, '즐거운 생활' 그 자체였던 밝은 미소[★FOCUS]

이덕행 기자 2021. 4. 2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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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현배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밝은 미소는 영원히 남았다.

오히려 고 이현배는 "제주도에 내려갈 때 '음악을 그만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다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한 꿈을 꾼 기분"이라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1999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시작해 20년 간 연예계에 몸담아온 이현배는 "내 주특기는 버티기다. 20년 동안 버텨왔으니 주특기라고 말할 만 하지 않을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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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이덕행 기자]
/사진 = 스타뉴스
故 이현배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밝은 미소는 영원히 남았다.

지난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에 출연 중인 고 이현배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고 이현배는 JTBC '슈가맨'에 나온 뒤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까지 출연하며 다시금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었다.

1시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인간' 이현배는 자신의 대표곡 '즐거운 생활' 그 자체였다. 고 이현배는 특유의 눈웃음으로 분위기를 밝게 만들었다. 함께 있던 동료들은 그를 향해 "항상 밝은 형이다" "맏형인데 막내 같은 매력이 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는 이미 고인이 전 재산을 처분하고 제주도로 내려가 홀로 게스트하우스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러나 당시 고 이현배가 힘들어 보인다거나 고민이 있어 보인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고 이현배는 "제주도에 내려갈 때 '음악을 그만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다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한 꿈을 꾼 기분"이라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줬다.

1999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을 시작해 20년 간 연예계에 몸담아온 이현배는 "내 주특기는 버티기다. 20년 동안 버텨왔으니 주특기라고 말할 만 하지 않을까"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당시에는 가볍게 웃고 넘겼지만 지금 돌아보니 미소 뒤에 숨겨뒀던 고통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고인의 발인식에서도 고인이 생전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발인식 직전까지도 고인의 빈소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울음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유족과 동료들은 고인의 마지막을 눈물로 배웅했다.

아직 고인의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를 둘러싼 갈등은 완전히 봉합되지 않았다. 다만 고인이 보여줬던 밝은 미소는 영원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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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행 기자 dukhaeng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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