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스 사태,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은 어디 갔을까

김효혜 2021. 4. 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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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이 불매 부추겨" 불가리스 사태 사과않는 남양유업 회장
불가리스 사태는 경영진의 오판이 야기한 사건
최고경영자의 진정성 있는 대국민 사과 필요해
모르쇠 태도와 방관은 불신과 반감만 키울 뿐
[김효혜 기자의 생생유통]

"실무진이 그런 식의 마케팅을 먼저 제안했을 리 없다."

"식품 홍보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무리한 표현인지 알고 있다."

"분명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일 것. 실무자는 안 된다고 말도 못했을 것이다."

남양유업의 불가리스 사태가 터진 이후 기자가 만난 식품업계 홍보·마케팅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한 A식품사 관계자는 "하다못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문구조차도 위험하다고 여겨 매우 조심스러워한다"면서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효과가 있다'고 표현한 것은 너무나 무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비상식적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남양유업은 지난 13일 '한국의과학연구원 주관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 개발' 심포지엄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면서 불가리스의 코로나19 예방 효과에 관한 내용을 발표했다. 기자가 받은 해당 자료에는 "'불가리스' 발효유 제품의 실험실 실험 결과 인플루엔자바이러스(H1N1)를 99.999%까지 사멸하는 것을 확인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억제 효과 연구에서도 77.8% 저감 효과를 확인함"이라고 쓰여 있다.

일반적인 보도자료 형식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홍보실을 통해 배포된 자료인 만큼, 이 자료는 언론 보도와 공론화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남양유업이 이를 널리 알리고 싶어했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이는 너무나 성급한 판단이었다. 발표 직후의 성과는 분명 고무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남양유업의 주가가 급등했으며 제품 판매 또한 늘어 품절 사태까지 빚어냈다. 그러나 즉각 인체 실험도 없는 과장된 발표였다는 전문가들 지적이 쏟아졌고 급기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5일 남양유업을 '허위 광고'로 경찰에 고발하고 나섰다. 어쩌면 남양유업의 실무진은 우려했을 역풍이다.

소비자들은 남양유업에 크게 분노했다. 불매운동이 다시 불붙었다. 이뿐만 아니라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생산시설인 세종공장의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주가 조작 혐의로 금융당국의 조사도 이어질 예정이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그렇다면 누구의 오판이 이런 사태를 빚어낸 것일까. 내부에선 쉬쉬하고 있지만 이번 사태의 책임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에게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룹 오너인 홍 회장이 결정하고 지시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진행되기 어려운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불가리스가 회사의 주력 상품인 데다 온 국민의 관심이 코로나19에 집중된 상황에서 오너의 허락 없이 리스크가 큰 행사를 감행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B식품사 관계자는 "톱다운 방식으로 위에서 내려온 지시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마케팅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양유업은 홍 회장의 확고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오너경영 체제를 고수하고 있다. 오너경영이 가진 장점이 많지만 남양유업의 경우 내부 시스템의 견제를 전혀 받지 않으면서 홍 회장 독단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남양유업 사내이사 4명 중 3명이 홍 회장의 가족이다. 이광범 남양유업 대표이사 상무를 제외하면 홍 회장과 그의 아들 홍진석 상무, 홍 회장의 어머니인 지송죽 여사 등이 등기임원으로 이사회를 이끌고 있다. 이사회 내에 별도 위원회가 없다 보니 사외이사가 2명 있지만 이마저도 이사회에서 추천한다. 홍 회장 등 오너 경영진을 감시할 인물을 본인이 직접 뽑는 구조다.

최근 몇 년간 남양유업 이사회 내에 올라온 안건이 부결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사외이사 등이 불참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이번 불가리스 사태도 사실상 홍 회장의 독단적인 경영이 불러온 참사라는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제대로 된 경영진 견제 장치가 마련됐다면 불가리스 사태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남양유업은 회사 입장문을 통해 "죄송하다"는 내용을 언론에 배포했을 뿐, 홍 회장 명의의 사과문은 지금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홍 회장이 자신의 명의로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은 2013년도 대리점 갑질 사태 때와 2019년 외조카 황하나의 마약 혐의 때 두 차례다. 2020년 경쟁사 댓글 비방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을 때는 이번 불가리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입장문을 통해 회사가 사과했다. 진정성 논란이 불거진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이제는 홍 회장이 직접 고개 숙여 인사하는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온 국민이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기만'을 한 것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지만 남양유업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같은 '불통'의 태도가 소비자들의 '불매'를 부추기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김효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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