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하지만 말고..' 또 다른 공동의 기억을 만들기 위해

한겨레 2021. 4. 2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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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중 ‘목포의 밤’ 스틸 컷.

많은 사람들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4월16일. 그런데 나는 그날의 기억이 없다. 뉴스를 들었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가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당일보다는 오히려 그 이후의 기억이 선명하다. 작업실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뉴스를 보던 기억이다. 배는 이미 기운 지 오래였고 에어포켓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에 대한 뉴스 보도였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으로 무기력하게 밥을 먹었었다. 이후 세월호 리본을 달고 다니곤 했지만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죄책감과 슬픈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에 자꾸 잊으려 했다. 그때 텔레비전을 보던 수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2018)는 그렇게 세월호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자리를 살펴보는 다큐이다. 이 옴니버스 다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회에서 세월호 추모 4주기를 맞이하여 제작했다. <어른이 되어>(오지수), <이름에게>(주현숙), <상실의 궤>(문성준), <목포의 밤>(엄희찬) 이렇게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2017년 목포에 세월호가 인양되고, 정권이 바뀌고, 그리고 생존 학생들이 성인이 될 정도로 시간이 흘렀을 때 발표된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하고 있다.

성장제일주의 아래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회적 참사를 무심하게 잊어온 우리 앞에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점검해야 한다는 경고였을 것이다. 진상 규명을 통해,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하는 것은 모두의 안전과도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과제였다. 아직 명확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많은 이들이 이제 그만하자고 말한다. 이 네 편의 다큐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아직 해결된 것은 없으며, 우리 모두가 사건을 목격한 당사자라는 점을 다시 직시하자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에야 비로소 세월호 사건을 바로 해결하고,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어른이 되어>는 단원고 생존 학생과 동갑내기인 감독이 ‘너에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진행된다. 감독의 두려움은 우리 사회의 두려움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회는 생존자를 배척하고,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출연했던 생존 학생 중 한명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상실의 궤>는 유가족이 상실의 시간을 어떻게 극복해내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살펴보고 있으며 진상 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도 연동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목포의 밤>은 목포에서 인양한 세월호를 조사하는 유가족을 따라가고 있다. 오랜 시간 바다 깊숙이 있다가 육지로 나온 세월호를 유난히 많이 보여주는 이 다큐멘터리는 인양된 세월호를 조사하는 과정 자체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선체를 조사하는 인력에게 일당을 지급하지 않는 업체의 모습 속에서 유가족은 참담함을 느낀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세월호에서 떨어지는 진흙들의 양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이름에게>는 현재 극장 개봉 중인 장편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의 씨앗이 된 작품이다. 처음엔 그저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내면도 국가에 침해당했기 때문에 자신의 싸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출연자. 추모활동을 하다가 직장에서 징계를 받을 뻔한 출연자. 그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담담하게 밝힌다.

한 출연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너무 미안하면 외면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그냥 내 삶에서 조금씩이라도 무엇인가를 하고자 한다’는 말. 부채감만을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실천이 그렇게 우리를 바꿔낼 것이다. 떳떳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어른이 되어> 출연자의 말처럼, 나 역시 작은 실천을 통해 또 다른 공동의 기억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나날이다.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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