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수비 변형에 야수 등판까지 상식 파괴 이어지는 프로야구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1. 4. 2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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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개막부터 갖가지 논란 일으킨 수베로 한화 감독..이러다 수건 던지기까지 나올라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루와 3루 사이를 수비수들이 텅 비운다.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변형)다. 수비를 하던 야수가 갑자기 투수 마운드에 오르기도 한다. 심지어 야수 3명이 번갈아가며 등판한다. 비단 이뿐일까. 볼 카운트 스리볼-노스트라이크 상황에서 타자가 방망이를 휘두르자 상대 감독이 대노한다. 요즘 야구, 확실히 다르다. 전통의 야구 상식이 파괴되고 부유한다.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이글스 감독이 쏘아올린 요즘 KBO리그의 화두다.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 코치 출신인 수베로 감독은 올 시즌 한화 사령탑을 맡으면서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때부터 파격적인 수비 대형을 선보였다. 상대 선수뿐만 아니라 볼 카운트에 따라서도 수비수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철저하게 데이터에 기초해 최적의 수비 대형을 만들어간다.

3월14일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한화 수베로 감독(오른쪽)이 수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연합뉴스

한화의 수비 변형은 양날의 칼과 같아

시프트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40년대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대 타자였던 테드 윌리엄스 때부터 수비 변형은 있었다. 윌리엄스가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타자였기 때문에 2~3루 사이 내야는 아예 비워버리고 1~2루 사이에만 내야수 4명이 포진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윌리엄스는 이런 수비 대형 때문에 통산 타율에서 15% 정도 손해를 봤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아주 낯선 풍경은 아니다. 수베로 감독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창단 첫 우승의 꿈을 일군 NC 다이노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상대 타자 맞춤형 시프트로 '재미'를 봤다. 두산 베어스 왼손 거포가 나오면 1~2루 사이로 수비수가 모이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한화의 시프트는 지금 효과를 보고 있을까. 일단 한화 투수진의 인플레이 타구 비율(BABIP·Batting average on ball in play)을 살펴보면 0.264(4월19일 스태티즈 기준)로 10개 구단 중 가장 낮다(1위). 상대 타자에 맞춰 수비 대형을 갖추면서 안타가 될 법한 타구를 제일 잘 낚아챘다는 뜻이다. 지난해의 경우 리그 8번째(0.324)로 높았다(8위).

그러나 수비 시프트는 양날의 칼과도 같다.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데미지가 크다. 특히 투수에게 그렇다. 평소 수비 대형이라면 잡히는 공이 안타로 변할 경우 투수는 마운드에서 급격히 힘이 빠지게 된다. 시프트 효용론에 대해서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반신반의 중이다. 단, 수비 위치를 조정하느라 경기시간이 길어지는 측면이 있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해 마이너리그 더블A에서는 수비 시프트를 금지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롯데 추재현이 4월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 투수로 등판하고 있다.ⓒ연합뉴스

빈번해진 야수의 투구…메이저리그, 금지 규정 만들기도

보통 야수의 마운드 등판 카드는 1군 엔트리 투수를 모두 소진한 뒤인 연장전 등에서 마지못해 쓰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역전이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 불펜 투수의 어깨를 보호하기 위해 야수가 마운드에 오른다.

4월10일 한화는 두산전에서 9회초 1대14로 경기가 기울자 수베로 감독이 내야수 강경학과 외야수 정진호를 차례로 등판시켰다. 정진호는 17일 NC전에서도 4대14로 뒤진 8회말 등판했다. 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같은 날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0대12로 뒤진 7회초 1사부터 외야수 추재현과 내야수 배성근·오윤석을 차례로 마운드에 올렸다. 아웃카운트 8개를 '야수 투수'에게 맡겼던 셈이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단 1점도 내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한 코치는 "투수들이 '힘 빼고 던져도 타자를 처리할 수 있겠구나'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야수의 등판은 최근 꽤 흔한 일이 됐다. 2005년에는 단 한 차례에 불과했으나, 2018년 75차례에 이어 2019년에는 90차례로 껑충 뛰었다. 메이저리그는 이에 6점 차 이상이거나 연장전 때만 야수를 등판시킬 수 있게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앞으로 국내에선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경기에서 야수의 등판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베로 감독이 물꼬를 트면서 그동안 눈치만 보던 다른 감독들도 허문회 감독처럼 적극적으로 야수를 제2의 투수 자원으로 활용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내 투수 뎁스가 엷다. 하지만 투수와 야수는 쓰는 근육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부상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실제로 강타자 호세 칸세코의 경우 1993년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투수로 땜질 등판한 다음 팔 통증을 호소하며 수술대에 오른 바 있다.

수베로 감독이 쏘아올린 '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외야수 정진호가 패전 마무리로 등판했던 4월17일 NC 나성범은 스리볼 노스트라이크 다음 방망이를 휘둘렀다. 당시 점수는 4대14. 이 타구는 파울이 됐으나 수베로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손가락 3개를 펴고 흥분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점수 차가 많이 난 경기에서는 스리볼에서 타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다. KBO리그를 처음 경험하는 수베로 감독이 분을 참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국내 리그에서는 스리볼에서도 방망이를 휘두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개인 성적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나성범은 이날 앞선 타석에서 3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안타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큰 점수 차 때 도루를 하거나 홈런을 치고 과한 세리머니를 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국내에서는 아니다. 지난해 KBO리그가 미국 현지에 생중계됐을 때 메이저리그 팬들이 왜 '빠던(타격 후 방망이 던지기)'에 열광했겠는가. 메이저리그에서는 평소 볼 수 없던 장면이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을 KBO리그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빠던'의 경우처럼 같은 야구지만 문화는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몸에 맞는 공이 나왔을 때 투수가 타자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모습도 메이저리그에서는 볼 수 없다.

KBO리그에 외국인 감독 두 명이 동시에 있던 때는 없었다. 매트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감독도 지난해 시즌에는 다른 야구 문화 때문에 적잖이 당황한 적이 있었다. 수베로 감독도 비슷한 입장일 것이다. 그는 리그에서 가장 젊은 선수단(평균 나이 25.9세)을 이끌면서 이런저런 새로운 야구를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극단적 수비 시프트도 그 연장선 중 하나다. 뎁스가 약한 팀 사정상 경기 후반 야수의 등판도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분위기다. 수베로 감독은 불문율의 차이도 차츰 알아가지 않을까.

큰 틀 안에서 조금씩 변화해 온 게 야구라는 종목이다. '스피드 업'을 위해 지금도 야구 룰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올해도 연장전에서 승부치기 룰(무사 2루에 주자를 놓고 시작)을 적용 중이다. 혹시 아는가. 프로에서도 7회 콜드게임이 인정될지. 혹은 경기 후반 가비지 이닝(의미 없는 이닝)을 없애기 위한 수건 던지기 룰이 생기거나. 야구, 여전히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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