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펜로즈 타일과 대칭

이승재 독일 빌레펠트대학교 수학과 박사후연구원 2021. 4. 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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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의 벽면 장식. 같은 모양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며 평면을 채우고 있는 테셀레이션(쪽매맞춤)을 볼 수 있다. 위키미디어 제공

블랙홀과 우주 연구로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 영국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세계적인 수리물리학자로 수학에서 대칭의 세계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이름을 딴 ‘펜로즈 타일’이 대표적이다.  

길을 걸을 때 쉽게 볼 수 있는 보도블록이나 집 마룻바닥과 벽지, 건물의 벽면에 단순한 무늬가 반복적으로 평면을 채운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테셀레이션’ 또는 ‘타일링’이라고 부르며, 한국어로는 ‘쪽매맞춤’이라고 부른다.

테셀레이션은 일정한 형태의 도형을 반복적으로 이어붙여 평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것을 뜻하는데, 이때 어떤 조건으로 도형을 이어붙이는지에 따라 테셀레이션의 종류가 구분된다.

가장 엄격한 조건의 테셀레이션은 단 한 종류의 정다각형만으로 평면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이를 ‘정규 테셀레이션’이라고 한다. 이 조건을 잘 생각해 보면, 오직 세 가지 모양의 정다각형으로만 정규 테셀레이션이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바로 정삼각형, 정사각형, 그리고 정육각형이다. 360도를 겹치지 않고 빈틈없이 채우려면 정다각형의 한 내각의 크기로 360도를 나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이해가 더 쉽다. 그림에서처럼 정오각형으로 평면을 채우는 경우에는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과 달리 어떻게 이어붙이든 빈틈이 생기거나 겹칠 수밖에 없다.  

평면을 주기적으로 채우는 방법의 수

물론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테셀레이션은 하나의 정다각형으로만 이뤄져 있지는 않다. 여러 모양의 구조들이 대칭이동을 반복하며 평면을 채우고 있다. 아래 사진의 이집트 벽지를 보자. 얼핏 보면 원을 겹쳐 평면을 채운 것 같지만, 각 원의 중심을 연결하면 정사각형, 더 쪼개면 직각이등변삼각형 패턴이 대칭이동을 반복해서 평면을 채우고 있다. 이렇게 대칭이동을 통해 주기적으로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테셀레이션이 ‘주기적 테셀레이션’이다.

테셀레이션의 역사는 아주 길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수많은 곳에서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를 이용한 반복적인 대칭이동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대칭과 균형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과도 연관이 있지만,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일이 끊임없이 새로운 패턴을 창조하는 일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문명에서 테셀레이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테셀레이션을 정확히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로 완전히 달라 보이는 무늬도 대칭이동의 관점에서는 동일한 테셀레이션인 경우가 많은데, 이를 엄밀히 분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칭이동을 통해 평면을 채울 수 있는 테셀레이션의 방법은 무한할까?’와 같은 질문에도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창작을 이어가려는 예술가들만이 새로운 패턴을 만들기 위해 계속 시도할 뿐이었다. 

대칭의 수학, 군론의 등장

어떤 대상의 특징을 이해하고 분류하는 것은 수학자들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테셀레이션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대칭을 연구하는 수학인 군론이 등장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여러 수학자들의 노력으로 평면 테셀레이션의 종류는 총 17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이 17가지 테셀레이션을 평면의 대칭군, 혹은 벽지군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은 흔히 ‘대칭의 성지’로 불리는데, 이 17개의 서로 다른 테셀레이션을 성벽 내부의 장식에서 모두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학자들이 군론을 통해 평면의 대칭군을 엄밀히 정의하기 훨씬 전부터 알람브라 궁전을 지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평면대칭을 활용해 궁전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이라크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 국가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의 장식 무늬(왼쪽)와 남태평양 중부 타히티섬에서 사용한 천 무늬(오른쪽). 둘은 전혀 다른 무늬처럼 보이지만 테셀레이션의 관점으로 보면 둘 다 90도의 회전 이동과 수직,수평,반사 이동이 반복된다. 위키미디어 제공

펜로즈 타일에서 시작된 노벨 화학상

그렇다면 같은 모양의 도형을 사용해서 대칭적으로 반복되는 기본 패턴 없이 평면을 무한하게 채워나가는 것은 가능할까? 얼핏 불가능한 일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 있다. 바로 펜로즈 명예교수다.

그는 1970년대 ‘펜로즈 타일’이라는 예를 들며 단 두 가지 모양의 사각형만으로 어떤 패턴의 반복도 없이 2차원 평면을 무한히 채워나갈 수 있는 ‘비주기적 테셀레이션’을 보여줬다. 아래 오른쪽 그림이 파란색 마름모와 초록색 마름모만으로 평면을 채워나가는 펜로즈 타일의 예시다. 어떻게 대칭이동을 해도 이 평면을 규칙성 있게 다시 만들 수는 없다.

여담으로 옥스퍼드대 단과대학 중 하나인 워덤칼리지에 있는 야외 공간의 바닥 역시 펜로즈 타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는 펜로즈 명예교수가 워덤칼리지의 교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펜로즈 타일의 가치는 단순히 보기 좋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는 예술성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규칙 없이도 비주기적 테셀레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펜로즈 타일 덕분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엉터리 실험으로 취급받던 고체 물질의 준결정 구조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이 발견의 주인공인 이스라엘 재료과학자 댄 셰흐트만 교수는 20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엄청난 발견을 가능하게 한 펜로즈 타일이지만, 정작 펜로즈 명예교수는 순전히 재미 삼아 펜로즈 타일을 고안해냈다고 한다. 그가 수학을 즐기며 만들었던 아름다운 모양이 노벨 화학상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수학이 이론과 추상 세계를 벗어나 현실에서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관련기사

수학동아 4월호, [옥스퍼드 박사의 수학로그] 펜로즈 타일링과 대칭

https://dl.dongascience.com/magazine/view/M202104N024

 

[이승재 독일 빌레펠트대학교 수학과 박사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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