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스토리] 구글 국내 대리인은 '구글코리아'가 될 수 있을까
3개 법으로 쪼개진 대리인, 부처별 해석·기업별 운영도 제각각
(서울=뉴스1) 손인해 기자 =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와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
각각 넷플릭스와 구글의 전기통신사업법상 국내 대리인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대리인으로 한국법인을 직접 지정한 것과 달리 구글은 구글코리아가 아닌 고객센터 아웃소싱 업체를 내세웠다.
구글·페이스북 등 글로벌 사업자들이 국내 대리인을 사실상 '페이퍼 컴퍼니'로 부실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정치권에선 구글코리아같은 국내 법인이 대리인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주소지 등이 불분명한 국내 대리인보다는 최소한의 실체가 있는 한국법인이 국내 이용자 보호 의무를 지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구글의 국내 대리인은 구글코리아가 될 수 있을까.
◇ 개정안 추진시 '한미 FTA 위반' 문제 삼을듯
24일 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우리나라 정부가 구글 본사에 국내 대리인으로 구글코리아를 지정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추진할 경우 한·미 FTA상 '현지 주재 의무 부과 금지' 규정 위반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FTA 제12.5조는 서비스 공급자에게 자국 영역에서 대표사무소 또는 기업을 설립 또는 유지하도록 요구하거나 거주자여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넷플릭스처럼 자발적으로 국내 대리인을 한국법인으로 지정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이를 의무화하는 건 안 된다는 의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특정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한국에 사무실을 운영하라고 하는 건 FTA 위반 가능성이 있다"며 "과거 해외 기업이 한국에 서비스하기 위해 국내 서버 설치를 의무화하라는 법안이 논의됐다가 무산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대리인은 인도에서 업무를 하더라도 본사와 연락할 수 있는, 한국어 서비스가 가능한 소통창구를 두라는 의미로 (한국법인과 달리) 장소적 의무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정 규모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는 국내 대리인을 지정해야 하는데, 이를 한국법인으로 하게 하면 어떻게든 자회사를 한국에 위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FTA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추진 때도 FTA 걸림돌
구글이 FTA 규정을 내세워 국내 입법을 막은 사례는 이미 있다.
앞서 구글은 지난 2월 이른바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 법안이 구글과 애플을 겨냥한 법안으로 한미 FTA상 '내국민대우'와 '시장접근 제한금지 의무'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당초 해당 법안에 여당과 합의했던 국민의힘이 구글의 입장을 받아들이며 '신중론'을 꺼내들면서 개정안 통과는 흐지부지된 상황이다.
개정안을 마련중인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측은 법안 발의를 통해 최소한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한미 FTA가 만능은 아니다"며 "완벽하진 않더라도 저희가 생각하기에 옳은 방향의 법안을 올리고 국회에 전문가를 불러 진짜 FTA 위반인지, 위반 소지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제조약이나 국제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면 고쳐지는 건 없다"며 "문제제기를 통해 글로벌 기업이 자정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고 했다.
◇ 3개 법으로 쪼개진 국내 대리인…부처별 해석도 제각각
국내 대리인 제도는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 그리고 개인정보보호법 3개 법에 쪼개져 있다.
2018년 9월 정보통신망법에 국내 대리인 제도가 처음 마련된 이후 비슷한 규정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이다.
지난해 8월 국무총리실 산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이뤄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과 같은해 5월 이른바 '넷플릭스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국회 통과 영향이다.
이 때문에 각 부처마다 국내 대리인 지정 기준이 다를 뿐 아니라 해석도 다르다.
전기통신사업법상 국내 대리인은 국내에 주소 또는 영업소가 없는 부가통신사업자 가운데 이른바 '넷플릭스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상 통신서비스 안정화 방안 의무 마련 대상(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네이버·카카오)으로,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가 해당한다.
정보통신망법 및 개인정보보호법상 국내 대리인은 국내에 주소 또는 영업소가 없는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중 전년도 매출액이 1조원 이상이거나 정보통신 부문 매출액이 100억원 이상인 자다.
넷플릭스의 경우 전기통신사업법을 소관하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부는 국내 영업소가 없다고 판단해 대리인 지정 의무 대상에 포함했으나, 정보통신망법을 소관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내 영업소가 있다고 보고 제외했다.
기업별로 국내 대리인 운영 방식도 제각각이다.
구글은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개인정보보호법상 국내대리인이 각각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와 디에이전트로 이분화했다.
반면 페이스북은 프라이버시에이전트코리아로 일원화돼있다.
◇ "국내 대리인 역할 자체 한계" 지적도
국내 대리인 제도 자체의 한계 때문에 주체가 한국법인인지 유무는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당초 글로벌 사업자에도 이용자 보호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국내 대리인 제도는 FTA 문제가 걸리면서 실제 업무를 처리한다기보다는 본사와 한국 정부를 연결하는 '연락망' 정도의 역할로 제한돼 왔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구글이 국내 대리인으로 구글코리아를 지정하면 '남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한다'는 메시지가 되면서 상징적 의미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실질적으로 국내 대리인 역할을 하는 데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구글 서비스 '먹통' 사태 당시 과기정통부는 국내 대리인이 아니라 한국법인인 구글코리아를 통해 본사와 소통한 바 있다.
s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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