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채1기 프로파일러 출신 배우 김윤희

이혜란 기자 2021. 4.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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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출신 배우 김윤희 씨. 어린이과학동아DB

범죄심리분석관(프로파일러)은 범행 현장에 남아 있는 아주 작은 흔적이나 범행수법을 치밀하게 연구하거나 용의자와의 대면 조사를 통해 범인의 성격이나 범죄성향, 행동방식을 밝혀낸다. 현재 국내에는 프로파일러가 30~40명 수준이다. 2006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공채 1기로 프로파일러 생활을 시작해 8년간 범행 현장을 종횡무진한 김윤희 씨를 만났다. 그는 2013년 프로파일러를 그만두고 배우로 전향했다.  

프로파일러에서 배우가 되기까지

2004년 유영철이 진술한 범행 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근처에서 경찰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 당시 잔혹한 범죄가 늘며, 우리나라에도 프로파일러 제도가 도입됐다. 동아일보 제공

2003년 9월부터 약 1년간 유영철은 20명을 해치는 연쇄살인을 저지르며 한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다. 2004∼2006년 정남규는 서울 서남부와 경기 지역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 역에서나 내려 대상자를 물색하며 13명을 살해했다.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도 나타났다.

범행 동기가 모호하고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잔혹한 범죄가 늘면서 경찰은 기존 수사 기법만으로는 범인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프로파일러 제도 도입을 검토했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범죄 수사에 프로파일링 기법을 도입했다. 2005년 경찰은 처음 공개 채용으로 프로파일러를 선발했고, 김 씨는 여기에 지원해 합격하면서 공채 1기 프로파일러가 됐다.   

그가 프로파일러가 된 건 우연한 기회 덕분이었다. 서강대에서 경영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김 씨는 인터넷에서 ‘제1회 한국범죄심리학회’ 개최 소식을 듣고 학회에 참석했고, 이 자리에서 범죄심리학자로 유명한 이수정 경기대 교수를 만났다. 김 씨는 “이수정 교수를 만나고 운명이 바뀌었다”며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기대 대학원 진학 중에 프로파일러 공채에도 합격했다. 그에게 프로파일러와 배우 두 직업에 대해 물었다. 

○ 프러파일러 출신 배우 

서울청 강의실에서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모습. 김윤희 제공

Q. 프로파일러는 무슨 일을 하나?

드라마에서 프로파일러가 ‘네가 바로 범인이야!’라고 외치며 범인을 지목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프로파일(Profile)’이라는 단어가 ‘윤곽을 그리다’라는 뜻인 것처럼 프로파일러도 범인의 윤곽을 그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범죄 현장과 기록을 분석해서 범인의 연령, 직업군 등을 추리하고, 이를 통해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범위를 좁히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이 사건의 범인은 30대 후반,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얼굴을 아는 관계(면식범)이며, 공장 업무를 하고, 초범일 것이다’와 같은 결론을 낸다. 

Q. 범인 추리는 어떤 과정을 거치나?

현장에서 청테이프가 범행도구로 발견됐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프로파일러는 과거 사건 자료에서 청테이프가 사용된 범죄들을 모아서 분석한다. 그리고 과거 사건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찾는다. 지금은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지만, 처음 프로파일러 활동을 하던 2000년대 중반에는 이런 데이터가 없어 범죄 수법이나 유형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작업부터 했다. 그래서 당시에는 해외 사례도 많이 참고했다. 

사이코패스는 대체로 감정과 공감을 담당하는 노의 '복측(안와)전전두피질'에 손상이나 기능이 떨어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어린이과학동아DB

Q. 주된 역할은 무엇인가?

사건이 접수되면 범죄 현장으로 출동한다. 현장에 도착해서는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면밀히 들여다본다. 범죄가 일어난 장소가 주택가인지 번화가인지, 유동 인구는 어느 정도인지, 가로등은 있는지, 대문의 상태는 어떤지 등 현장의 주변 환경을 통해 침입 방법 등을 유추한다. 실제 범행이 일어난 시간에 현장을 재방문해 특이점을 찾기도 한다. 

용의자가 특정되면 지문 감식, DNA 검사 등을 하는 과학수사대, 수사를 진행하는 형사들과 함께 용의자가 실제 범인일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 이때 형사가 심문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이들을 대할 심리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거나 조롱하는 등 성향이 제각각이다. 범인의 성향에 맞춰 형사에게 어떻게 심문하면 좋을지 전략을 제공한다. 

Q. 범인을 조사하는 경우도 있나? 

용의자가 진범으로 확인됐다고 해서 프로파일러의 업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범인을 면담하고 사건 기록을 정리한다. 범행 동기 등 사건 전반을 분석하기 위해 범인이 살아온 환경, 범행 계획, 도주 경로 등을 물어보기도 하고,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기억 등도 조사한다. 때때로 심리검사도 진행한다. 이 기록이 향후 다른 사건 분석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장기화되는 경우에는 계속 프로파일링을 이어간다. 더 많은 사건 자료를 모으고 대조한다. 해외 사례를 비교하면서 알아낸 사실들을 연구물로 발행하기도 한다.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셈이다.

Q. 프로파일러의 고충이 있다면? 

범인이 자신의 인생을 털어놓을 때는 순간적으로 동정심이 생기기도 하고, 인간적으로 동질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선과 악에 대한 경계가 모호해지며 혼란스런 순간을 겪을 때가 있다. 또 범죄의 내용이 자극적인 경우가 많아 평소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가벼운 대화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스스로가 감정적으로 메말라간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프로파일러는 자신의 감정 관리가 중요하다. 

Q. 배우라는 전혀 다른 직업을 갖게 된 이유

프로파일러로 일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큰 수술을 했다. 이후 하고 싶은 건 다 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고민 끝에 결국 배우라는 꿈에 도전하게 됐다. 우연한 기회로 2016년 방영된 tvN 드라마 ‘시그널’의 배우 겸 보조작가로서 범죄 관련 자문도 했다. ‘시그널’은 2005년 발생한 서울 신정동 연쇄살인사건을 모티프로 삼았다. 피해자가 어떻게 공격을 당했을지, 범죄자에게 사전에 얼마나 노출됐는지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일을 자문했다. 동시에 드라마에서는 피해자 역할을 맡아 연기도 했다. 피해자 특성에 따른 범인의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 프로파일링을 수도 없이 했지만, 배우로서 피해자를 연기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공통점이라면 두 직업 모두 사람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Q.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대학에서 사회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자격 요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분야의 정보가 많을수록 현장 적용이 유리한 만큼 어릴 때부터 많은 경험을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또 프로파일러는 머리만 쓰는 직업이 아니어서 몸도 마음도 모두 건강해야 한다. 체포술 외에 무도(태권도, 검도 등), 오래달리기, 팔굽혀펴기 등 체력 시험도 통과해야 하니 평소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기만의 스트레스 완화법이나 사건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4월 15일 발행, [JOB터뷰] 프로파일러, 배우로 2막을 올리다!

https://dl.dongascience.com/magazine/view/C202108N024

[이혜란 기자 r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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