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신궁’ 고2 김제덕, 올림픽 티켓 명중
경북일고 2학년 김제덕(17)은 23일 원주양궁장에서 열린 양궁 국가대표 최종 평가전 마지막 날 마음을 비우고 사대(射臺)에 섰다.
“어제 꼴찌를 한 다음 욕심부리지 말자고 마음 먹었어요. 자신감만 갖고 쏘자고. 점수를 확인할 때마다 황효진 코치님에게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쐈는지 계속 설명했어요.” 이처럼 자신의 활을 쏘는 데만 집중한 게 성적으로 이어졌다.
전날까지 커트라인(3위) 안팎을 오갔던 그는 23일 출전 선수들이 일대일 대결을 벌이는 리그전에서 2위에 올랐다. 점수로 순위를 정하는 오후 기록전에서 그는 경기 도중 동료들이 15분 쉬는 동안 혼자 연습 사대에 서서 3발을 쐈다. “잘 쏜다는 느낌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그렇게 ‘느낌’까지 붙잡은 김제덕은 기록전도 1위로 마무리하며 1·2차 평가전 합계 남자 3위로 도쿄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올림픽 개막일(2021년 7월 23일) 기준으로 딱 17세 3개월인 김제덕은 한국 남자 양궁 최연소 메달리스트에 도전한다. 현재 국가대표 남자부 코치를 겸하고 있는 정재헌 대구광역시 중구청 감독이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당시 개막일 기준 만 18세 1개월 25일로 개인전 은메달을 목에 건 게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
◇고교 궁사, 男 양궁 최연소 메달 도전
김제덕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신궁(神弓)’ 소리를 들었다. 한 방송사의 영재 소개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그는 중3이던 2019년 도쿄 올림픽 선발전에 나섰다가 어깨 부상으로 중도 포기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며 기회를 다시 잡았다. 등교가 가능해진 후 매일 300발씩 쏘며 실력을 닦았다. 작년 10월 2차 선발전에선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황효진 코치는 “집중력이 좋은 데다 겁 없이 패기 있게 쏘는 게 김제덕의 장점”이라면서 “보통 잘 안 맞으면 조금씩 조정해서 쏘는데 제덕이는 너무 대담하게 쏴 때론 섬뜩함을 느낀 적도 있다”고 했다. 김제덕은 평소엔 햄버거와 망고를 좋아하는 고등학생이다. 이날 기자회견 후 조용히 경기하던 자리에 돌아가서 쓰레기를 치운 그는 “큰형님들과 올림픽에 나가서 든든하다”며 씩 웃었다.
◇김우진·오진혁 ‘베테랑’도 다시 도전
김우진(29·청주시청)과 오진혁(40·현대제철)도 남자부 1~2위로 도쿄 올림픽 대표로 선발됐다. 여자부에선 강채영(25·현대모비스)과 장민희(22·인천대), 안산(20·광주여대)이 1~3위로 도쿄행을 확정했다. 이들은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달성했던 사상 첫 전관왕(남녀 개인·단체 금 4개)에 다시 도전한다. 도쿄 올림픽엔 남녀 혼성 종목이 더해져 금메달이 모두 5개다. 여자 단체전은 ‘올림픽 9연패(連覇)’ 신화를 조준한다.
‘세계 최강’ 한국 양궁 선수들은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올림픽 메달보다 대표 선발전 3위 안에 들기가 더 어렵다”는 말을 한다. 남녀 선수 198명이 작년 10월부터 세 차례 선발전, 두 차례 평가전을 거쳐 남녀 각 3명씩 총 6명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이들이 7개월 동안 토너먼트, 리그전, 기록전 등을 치르면서 쏜 화살만 약 3000발에 달한다. 올해는 특히 최종 평가전 마지막 날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접전이 펼쳐졌다.
여자부 안산도 김제덕과 마찬가지로 극적으로 올림픽 대표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선발될 줄 몰랐다”며 “기록보다 쏘는 자세에 집중해 경기에 임했다. 가상의 벽을 세워 놓고 옆 선수 신경 쓰지 않고 나와 표적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성은 광주여대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김우진은 도쿄서 개인, 남녀 혼성까지 3관왕에 도전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 첫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딴 오진혁은 9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다시 밟는다.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강채영은 5년 전 국내 평가전에서 리우 올림픽 여자 개인·단체 2관왕 장혜진에게 밀려 4위로 안타깝게 올림픽 티켓을 놓쳤다. 강채영은 “혜진 언니와 올림픽에 함께 나가고 싶었는데 언니가 떨어져 아쉽다”며 “내가 불안해 할 때마다 언니가 전화로 ‘잘할 수 있다’며 힘을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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